[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마약과의 전쟁 1년, 승패는?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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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부 차원 대응에도 마약 사범 역대 최다
단속·처벌과 치료·재활 총괄하는 기구 필수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대검찰청 주관 제30차 ‘마약류 퇴치 국제 협력회의’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영상 축사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범정부 차원에서 온 힘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자신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꼭 승리해 달라”고 당부한 일을 환기한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은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을까.


‘제30차 마약류 퇴치 국제협력회의’가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제30차 마약류 퇴치 국제협력회의’가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조금씩 패배하고 있다

근래 배우 이선균, 가수 지드래곤의 마약 투약 의혹이 일면서 우리 연예계가 마약 파문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일각에선 “이선균, 지드래곤 선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여당에 불리할 수 있는 정치적 이슈를 덮으려는 ‘기획 수사’라고 의심하는 이도 있지만, 여하튼 현재 국내 마약 범죄 현황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검거된 국내 마약류 사범은 모두 2만 230명. 한 해 검거된 마약 사범이 2만 명을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그것도 10~12월 자료는 합산되지 않은 수치다. 국내 마약 범죄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28배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이를 고려하면 가히 국가적 비상상황이라 하겠다.

마약과의 전쟁에 따른 검거 건수 폭증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현재로선 정부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는 매우 힘겨워 보인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마약 유통·소비 실태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선 ‘액상 대마’ 광고가 버젓이 나붙고, 학원가에선 음료수 시음 행사를 가장해 ‘마약 음료’를 배포하는가 하면, 클럽에선 친구끼리 마약 탄 술을 나눠 마시는 게 예사로 여겨지는 지경이다. 마약 사범도 특정 계층이나 직업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 계층으로 확산하고 있다. 마약에 빠진 아들을 경찰에 직접 신고한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최근 "(어느 집이든) 집안에 누군가는 마약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경고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면 검경이 제아무리 열정적으로 마약류 사범을 검거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조금씩 패배하고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 씨가 지난 4일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재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 씨가 지난 4일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재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7일 ‘마약류 퇴치 국제 협력회의’에서 심인식 유엔마약사무소 선임연구관은 “한국의 마약 시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유가 있다. 현재 동남아를 비롯한 국제 마약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들에게 근래 한국은 좋은 먹잇감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조직이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하는 수법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다. 심 선임연구관은 이처럼 해외에서 들어오는 마약 루트를 차단하지 못하는 한 국내에서 마약을 근절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국내에서의 마약 유통 과정도 기상천외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한 마약 거래가 성행하고, 음료나 아이스크림, 다이어트약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품이나 약으로 속여 팔다 보니 적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마약 수사 전담기구, 즉 마약수사청 설치를 촉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현재 마약 밀수는 검찰이, 투약 사범은 경찰이, 국내 밀반입은 관세청이 맡고 있지만 좀체 마약 유통의 뿌리를 뽑지 못한다. 기관들 사이 공조체제와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신종 마약 범죄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약 수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마약수사청 설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투약 사범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행법상 논란의 소지가 많은 만큼, 별도의 마약수사청 설치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이 지난 6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이 지난 6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마약 재범률은 50% 수준이다. 마약 사범 2명 중 1명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는 말이고, 마약 중독자에 대한 치료와 재활 훈련이 마약 범죄율을 줄이는 데 필수조건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내년도 정부 예산 중 보건복지부의 마약 치료·재활 예산으로 편성된 금액은 4억 1600만 원에 불과하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28억 600만 원을 요구했지만 대폭 삭감돼 겨우 15%만 반영됐다. 정부가 마약 사범 검거에만 치중하고 치료·재활은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마약 중독자 관련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선 마약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마약 중독자 치료·보호 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올해 기준 전국에 24곳. 하지만 그 수가 해마다 줄고, 그나마 남은 기관들도 실질적인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활·치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처벌과 병행해야 마약과의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례를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까지 엄벌주의 마약 정책을 폈다. 하지만 마약 사범은 늘기만 했다. 이에 1989년 마이애미 등을 중심으로 형사처벌과 치료를 통합하는 약물법원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제도 시행 18개월 만에 마약 범죄가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마약 치료·재활 업무가 부처별로 분산돼 있어 효율적이지 못하다. 현재 치료는 보건복지부가, 예방·재활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맡고 있는데, 이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은 전면적이어야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단속과 처벌, 치료와 재활이 총체적으로 강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관련 조직을 정비하는 일이 그래서 시급하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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