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더 마블스’와 ‘뉴 노멀’, 저만 무덤덤하게 봤나요
마블 스튜디오 영화는 점점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어벤져스’ 마지막 편인 ‘엔드 게임’(2019)까지는 엄청나게 흥행했지만, 이후 쏟아진 속편들의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지난 8일 개봉한 ‘더 마블스’도 예외는 아닙니다. 당장 실관람객들의 평가가 박합니다. 개봉 당일 CGV 골든에그가 70%대를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 직접 관람해본 기자가 아쉬웠던 부분들을 짚어봤습니다.
‘더 마블스’와 같은 날 개봉한 ‘뉴 노멀’은 옴니버스 형식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뉴스를 통해 매일 같이 접하는 강력 범죄들을 소재로 독특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다만 ‘뉴 노멀’ 역시 관객들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모양새입니다.
영화 ‘더 마블스’와 ‘뉴 노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눈은 즐거운데 감동은 없는 ‘더 마블스’
니아 다코스타 감독의 신작 ‘더 마블스’는 영화 ‘캡틴 마블’(2019)의 속편입니다. 기자는 캡틴 마블은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우주 최강의 여성 히어로가 종횡무진 활약하며 빌런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통쾌했습니다.
후속작인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와 그의 오랜 친구의 딸인 ‘모니카 램보’(테요나 패리스), 그리고 캡틴 마블의 열혈 팬인 ‘카말라 칸’(이만 벨라니)이 ‘팀 마블스’로 뭉쳐 크리족 리더인 ‘다르-벤’(자웨 애쉬튼)에게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몇몇 설정들을 통해 관객의 흥미를 돋우려 합니다. 다르-벤은 고향 행성을 구하기 위해 지구를 포함한 수많은 행성들을 파괴하려 하는 빌런입니다. 이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팔찌 ‘퀀텀 밴드’를 손에 넣지만, 다른 한 짝을 찾지 못합니다. 공교롭게도 나머지 한 짝은 카말라가 가지고 있습니다. 팀 마블스는 다르-벤의 밴드를, 다르-벤은 카말라의 팔찌를 빼앗기 위해 충돌합니다.
다만 이러한 설정에서 기시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 행성을 파괴하려 하는 빌런은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엄청난 능력의 원천이라는 퀀텀 밴드를 둘러싼 싸움은 타노스의 ‘건틀렛 장갑’을 두고 싸운 ‘어벤져스’ 이야기와 너무 유사합니다.
마블 스튜디오가 ‘디즈니+’를 통해 쌓아 올리고 있는 진입장벽도 영화를 즐기는데 방해가 됩니다. 영화 속 캡틴 마블과 모니카는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보입니다. 모니카는 캡틴 마블을 ‘이모’라고 부르기까지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불편해 보입니다. 이 미묘한 갈등이 차츰 해소되는 것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모니카라는 캐릭터 자체를 처음 본 관객 입장에선 이 감정선의 흐름에 이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모니카는 1편인 캡틴 마블에선 아역으로 잠시 등장했고, 디즈니+ 시리즈인 ‘완다비전’에서 성인 역할로 나왔습니다.
영화 ‘더 마블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더 마블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캡틴 마블과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카말라 캐릭터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카말라는 디즈니+ 시리즈 ‘미즈 마블’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실제로 다코스타 감독은 ‘더 마블스’에 대해 “단순히 ‘캡틴 마블’의 속편을 연출하는 게 아니라 ‘미즈 마블’, ‘완다비전’, ‘시크릿 인베이전’,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의 속편을 만든다는 각오로 연출에 뛰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디즈니+ 시리즈까지 섭렵해야 이번 작품에 제대로 빠져들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더 마블스’의 시각적 즐거움은 확실합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 만큼 광활한 우주와 우주선, 여러 행성이 등장해 눈을 뗄 수 없습니다. 특히 화려한 의상의 주민들이 노래와 춤으로 소통하는 행성 ‘알라드나’에서 펼쳐지는 시퀀스는 한 편의 뮤지컬이나 발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배우 박서준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박서준은 알라드나 행성의 ‘얀 왕자’ 역할을 맡았는데, 첫 등장 장면이 나름 임팩트 있습니다. 노래와 춤은 물론 액션까지 선보이며 존재감도 드러내는데, 분량이 적어 아쉽습니다. 한 영화 리뷰 유튜버가 초 단위로 시간을 재본 결과 박서준의 등장 씬은 총 3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 탓에 박서준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기자도 딱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캡틴 마블을 비롯한 3명의 히어로는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서로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이로 인해 코믹한 장면은 물론이고, 보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연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캐릭터 간 ‘케미’는 조금 아쉽습니다. 마블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이자 1989년생으로 최연소 감독인 다코스타가 다양한 인종과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 기용으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점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캡틴 마블과 모니카, 카말라로 구성된 ‘팀 마블스’ 3명의 호흡이 딱히 특별하거나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빌런 캐릭터 역시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기자는 사실 카말라와 모니카의 의상도 거슬렸습니다. 캡틴 마블의 유니폼은 총알도 막을 것 같은 특수소재 느낌이 나는 반면, 나머지 두 히어로의 의상은 헐렁하고 주름이 지는 등 다소 허술해 보였습니다.
‘더 마블스’는 쿠키 영상과 쿠키 음성이 각각 한 개씩 있습니다. 쿠키 음성의 경우 사실상 무의미하고, 또 다른 세계관으로의 확장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점점 산으로 가는 마블 스튜디오라서,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영화 ‘뉴 노멀’.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신선한 호러 ‘뉴 노멀’…공포 수위는 ‘노멀’
끔찍한 범죄는 어느덧 우리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여기 부산에서도 전국을 뒤흔드는 엽기적인 범죄가 연일 발생하고 있죠. 정범식 감독이 ‘곤지암’(2018)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뉴 노멀’은 이렇듯 공포가 일상이 된 우리 사회 현실을 반영한 K-스릴러물입니다.
영화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펼쳐집니다. 평범해보이는 일상에 갑작스레 닥치는 범죄의 공포가 서늘함을 안깁니다. 한밤 중 혼자 사는 여성(최지우)이 연쇄살인범 소식을 다룬 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화재경보기 점검원이 문을 두드립니다. 망설이던 여성은 문을 열어줬는데, 무례하기 짝이 없는 점검원은 오싹한 말들을 뱉습니다.
이 밖에도 휠체어를 탄 할머니를 돕는 중학생(정동원), 데이트 어플로 매칭이 된 사람을 기다리는 젊은 여성(이유미) 등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다가 마주하게 되는 반전이 이어집니다. 음료수 자판기에서 의문의 러브레터를 발견한 남자(최민호), 옆집에 사는 여성을 매일 훔쳐보고 몰래 촬영하는 백수(표지훈), 진상 고객들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하다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인 사건이지만, 등장인물들은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뉴 노멀 시대가 이런 식으로 연결돼 있고 서로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정 감독은 설명합니다.
영화는 ‘곤지암’처럼 작정하고 관객을 놀라게 하는 호러물은 아닙니다. 극한 공포감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공포를 다뤄 색다른 오싹함과 스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현실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그중에서도 최지우의 변신은 놀랍습니다. 싸늘한 표정과 눈빛 연기에서 말 그대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색감과 음악을 적극 활용한 스타일리시한 연출은 서스펜스에 신선함을 더합니다. 다만 일부 관객들을 중심으로 일본 단편 드라마인 ‘토리하다’와 스토리가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혹평이 나옵니다. 실제로 엔딩 크레딧에서는 일부 아이디어를 ‘토리하다’에서 차용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 ‘뉴 노멀’.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