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장황한 ‘헝거게임’ 속편…비극적 스릴러 ‘비닐하우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와 ‘비닐하우스’. 누리픽쳐스·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와 ‘비닐하우스’. 누리픽쳐스·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헝거게임’ 시리즈가 8년 만에 속편을 내놨습니다. 지난 15일 개봉한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기존 시리즈 속 독재자 캐릭터인 ‘스노우’의 과거를 보여주는 프리퀄 작품인데, 전작들을 보지 않아도 감상에 무리가 없을지 기자가 직접 관람해봤습니다.

헝거게임이 개봉한 15일 열린 제59회 대종상에서는 배우 김서형이 ‘비날하우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주목 받았습니다. 김서형은 앞서 지난달 열린 ‘2023 부일영화상’에서도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비닐하우스’는 개봉관이 적고 상영기간이 짧은 독립영화 특성상 국내 누적 관객 수가 1만 명을 조금 넘는 데 그쳤습니다. 기자 역시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는데, 최근 웨이브를 비롯한 각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공개돼 시청해봤습니다.


영상미 좋지만 장황한 ‘헝거게임’ 프리퀄

‘헝거게임’ 시리즈는 독특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바탕으로 매니아층을 낳았습니다. 영화는 북미에 세워진 독재국가 ‘판엠’을 배경으로 합니다. 수도인 ‘캐피톨’은 귀족들이 거주하는 유토피아라면, 피지배층인 ‘조공인’들이 살고 있는 나머지 12개 구역은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는 야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양극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캐피톨에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헝거게임’입니다. 1년에 한 번 각 구역에서 추첨으로 2명을 선발, 총 24명의 참가자가 생존을 놓고 서바이벌 게임을 펼칩니다. 캐피톨은 이 게임을 전국에 생중계해 관심을 끌고, 가난하고 힘없는 조공인들의 불만을 잠재웁니다.

미국 작가 수전 콜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극빈층 구역인 12구역의 소녀 ‘캣니스’(제니퍼 로렌스)가 헝거게임을 통해 영웅이 되고, 판엠을 지배하는 독재자인 ‘스노우’(도널드 서덜랜드)를 상대로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12년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으로 시작해 ‘헝거게임: 더 파이널’(2015)까지 총 4편으로 제작됐습니다. 15일 개봉한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8년 만에 나온 프리퀄(시간상 앞선 사건을 다룬 속편)입니다.

신작은 스노우의 과거를 다룹니니다. 캣니스가 처음 헝거게임에 출전하는 1편보다 64년 전이라는 설정입니다. 쇠락한 명문가의 아들이자 야망 있는 청년이었던 스노우는 신분 상승을 노리며 헝거게임 참가자들의 멘토 역할을 맡습니다. 자신이 코칭하는 12구역의 소녀 루시(레이철 지글러)가 게임에서 맹활약하면 스노우도 출세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헝거게임 자체보다는 스노우라는 인물의 성장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기존 시리즈와 비교하면 헝거게임의 규모와 비중이 작습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스노우라는 독재자가 탄생한 과정을 설명하려 했다고 합니다.


영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누리픽쳐스 제공

젊은 시절 스노우는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처음엔 루시를 그저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그와 사랑에 빠지면서 입신양명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타인을 해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고, 다시금 출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노우는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선 흥미가 가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그가 왜 독재자로 ‘흑화’했는지 설득하기에는 스토리가 빈약합니다.

사실 이 시리즈는 세계적으로는 히트를 쳤지만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기자 역시 전편들을 보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전개가 상당히 지루하고 장황하게 느껴졌습니다. 156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어도 너무 깁니다.

등장 인물들에게도 이렇다 할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선 주인공인 스노우가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인데, 그가 저지르는 악행들이 갑작스럽고 뜬금없어 좀처럼 공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르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연출도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루시 역을 맡은 지글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뮤지컬 영화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2)에서 주연을 맡아 얼굴을 알린 신예 배우입니다. 지글러는 이번 영화에서도 노래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데,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나 흐름과는 따로 놀아 억지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독특하고 비극적인 스릴러 ‘비닐하우스’

영화 ‘비닐하우스’.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비닐하우스’. 트리플픽쳐스 제공

지난 7월 26일 개봉한 ‘비닐하우스’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상, 왓챠상, 오로라미디어상까지 3관왕을 거머쥐었던 수작입니다.

영화는 이후에도 수상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열연을 선보인 배우 김서형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지난달 열린 2023 부일영화상에 이어 지난 15일 제59회 대종상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차지했습니다.

1만여 명의 관객을 모은 비닐하우스는 선뜻 손이 가는 가볍고 재미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김서형이 연기한 주인공 ‘문정’은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입니다. 문정의 꿈은 ‘내 집 마련’입니다. 소년원에 있는 아들이 출소하면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위해 치매를 앓는 할머니 ‘화옥’을 돌보는 간병인으로 일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화옥이 죽게 되고, 문정이 119를 부르려던 찰나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이 전화를 받은 문정은 화옥의 남편이자 시각 장애인인 ‘태강’(양재성)을 속이고 살인 사실을 숨기기로 합니다.

고통과 불행이 연속되는 문정의 삶을 바라보는 건 괴롭습니다. 문정은 어쩌다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답답할 정도로 선하고 정이 많고 소심한 인물입니다. 갈 곳 없는 지적 장애인 ‘순남’(안소요)이나 앞을 못 보는 태강 등 약자를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희망 없는 현실이 가슴 속 깊은 곳에 심어둔 절망감 탓에 자해를 일삼는 등 정신이 온전치 못합니다.

약간은 느슨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화옥이 죽게 된 중반부 이후 스릴러로 변합니다. 화옥의 죽음을 숨기려는 문정과 이를 알아챌 듯 말 듯한 태강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서스펜스를 낳습니다. 특히 문정이 태강을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면서 불편하고 황당한 일이 계속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강은 점차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관객은 과연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극중 문정과 마찬가지로 잔뜩 마음을 졸인 채 말이죠.


영화 ‘비닐하우스’.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비닐하우스’.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의 핵심은 문정 역을 맡은 김서형의 열연입니다. 어눌하고 불안해 보이는 심리 묘사는 물론이고, 태강을 속이기로 한 뒤 변하는 눈빛과 표정 연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절망감에 허덕여 머리를 때리며 자해하는 모습에선 처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당초 김서형은 이 작품 출연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를 본 뒤 “이 작품을 끝내고 나면 얼마나 감정이 피폐해질까 걱정됐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캐스팅 디렉터와 이솔희 감독의 설득에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타게 해주겠다”는 이 감독의 농담도 현실이 됐습니다.

극중 조연들의 연기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시각 장애 노인 태강을 맡은 양재성, 오갈 데 없는 지적 장애 여성 순남을 맡은 안소요는 영화 장르를 다큐멘터리로 착각하게 할 정도로 현실적인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야기의 주요 소재인 치매는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치매라는 병이 평범한 가정에 불러오는 불행에 대해 걱정하게 됩니다. 영화 속 사건들은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포감마저 엄습합니다. 김서형 역시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사실 스토리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개연성이나 현실성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문정에게 연속되는 불행이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파를 배제한 탄탄한 연출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 충격적인 열린 결말로 끝맺는 플롯이 군더더기 없습니다.

김서형은 지난달 부일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상을 받으면서 사람들 관심이 있을 때 재개봉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자 역시 OTT에서라도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감상해보길 바랍니다. 관객 수가 1만 명에 그치기에는 아까운 영화입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