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나폴레옹의 이각모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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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서양의 연결로였던 실크로드의 중간쯤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라는 도시가 있다. 비행기로 거의 8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얽힐 게 없을 듯한 곳인데, 이곳에서 발견된 한 폭의 궁전 벽화로 인해 친근한 곳이 됐다.

7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이 벽화는 많이 훼손돼 원형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은 모자인 조우관을 쓴 인물 2명이 보인다. 바로 고구려인이다. 표정은 물론 복색도 뭉개져 알 수 없으나, 조우관만은 누가 봐도 그가 부인할 수 없는 고구려인임을 가리킨다. 조우관이 없었다면 수천 년 뒤 후손들이 이 멀고 먼 땅에 고구려 사신이 왔다 간 사실을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이처럼 모자에는 단순한 신체 보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몸을 치장하는 물건 중 인간이 가장 큰 의미를 두는 게 모자와 복식이라고 하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서양에서 모자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나폴레옹을 들 수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남긴 그림 속 이각(二角) 모자를 쓴 나폴레옹의 모습은 강렬하다. 백마를 탄 나폴레옹이 알프스산맥의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기 위해 진격하는 역동적인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됐다. 여기에 “내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는 그의 어록이 붙으면 느낌은 더하다. 둥근 모자챙이 앞뒤 혹은 양옆으로 이어진 이각모는 실제와 이미지가 겹치면서 이렇게 나폴레옹과 등치된다.

나폴레옹이 쓰던 이각모가 최근 파리에서 열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약 27억 3000만 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생전 120여 개의 모자를 갖고 있었는데, 이 중 20개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번에 낙찰된 모자는 그가 엘베섬을 탈출해 파리로 진군하면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개인이 소장한 그의 이각모는 모두 2개로, 이 중 하나는 우리나라 식품업체 회장이 갖고 있다.

나폴레옹 이각모의 최고가 경매에 이어 다음 달 초에는 그의 삶을 담은 영화도 개봉된다고 하니, 프랑스 근대사 최고의 논쟁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또 뜨겁게 일 듯하다. 죽은 지 200년이 됐으나, 아직도 유품 하나, 생애의 한순간까지 그에 대한 화제는 끝이 없다. 나폴레옹까지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지만, 이제라도 ‘나만의 이각모’를 만들어 보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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