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부산 일념으로” 지구 6바퀴 돈 박형준 시장
아프리카, 중남미 등 ‘험지 ’ 찾아다니며 지지 호소, 해외 51개국 등 143개국 497명 만나
회원국 대통령에 ‘문전박대’ 당하자 대통령이 좌파라는 점 공략해 “나도 학생운동” 마음 열어
34시간 걸린 아프리카, 빈 살만 전용기로 6시간 만에 찾아가 표심 흔들어 ‘허탈’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4차 총회에서 회원국 대표들을 만나고 있다. 부산시제공
2021년 6월 부산이 국제박람회기구(BIE)에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 신청서를 제출할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제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싱거운 승리를 점쳤다. ‘원유 대국’ 사우디가 막강한 오일머니와 왕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 빠르게 회원국들의 지지를 하나둘 선점하며 대세론을 이미 공고히 형성해놓은 터였다.
운명의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5일 앞둔 현재 판세는 당초 약체로 분류됐던 부산이 이탈리아 밀라노를 제치고 ‘2강 1중’ 구도를 만들어 리야드와 박빙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언더독’ 부산이 리야드를 턱밑까지 추격한 것만 해도 엑스포 역사상 최대 이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정부와 부산시의 엑스포 유치 전략은 '밀착 마크'로 요약된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사우디보다 한발 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만큼, 정재계와 부산시 인사들이 BIE 182개 회원국을 나눠 맡아 일일이 국가를 찾아다니며 부산의 장점을 알리는 방식으로 각국의 표심을 공략했다.
특히 엑스포 유치의 최선봉에 선 박형준 부산시장은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는 ‘살인적인 강행군’을 펼치며 ‘엑스포도시 부산’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이 엑스포 도전장을 던진 후 이달까지 박 시장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동한 거리만 23만 8504km로, 지구 6바퀴를 돈 거리에 달한다. 국내에서 135개국, 393명의 회원국 인사를 만났고, 해외에서는 51개국 104명과 유치 교섭을 진행했다. 박 시장이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한 해외 인사만 143개국, 497명에 달한다. 안병윤 행정부시장과 이성권 경제부시장, 박은하 범시민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부산시 고위급 전체로 확대하면 150개국 770명의 해외 인사와 접촉했다. BIE 전체 회원국 182개국 중 우리나라와 경쟁도시국인 사우디,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접촉 가능한 국가는 모두 훑은 셈이다.
박 시장은 특히 이동거리가 멀고, 한국과의 교류가 취약해 우리 정부 고위급 인사들도 방문하기 꺼리는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연안, 중남미 등 오지와 변방 국가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왔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대통령, 투자와 기업 네트워크를 매개로 접근이 용이한 재계 총수들과 달리 지자체장 신분이다 보니 회원국 정상들과 만남 자리를 만드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난관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엑스포 지지 도시를 최종 결정하는 권한은 결국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쥐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정상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소위 ‘문고리 권력’이 누군지를 파악해 지지를 호소하고, 정상과의 만남을 주선해줄 것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한 나라 한 나라 공략해왔다”며 “국가별로 경호실장, 국방부장관, 종교 지도자까지 가능한 모든 채널이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문전박대’가 계속되면 때로는 박 시장의 ‘개인기’로 돌파해냈다. 한 번은 약속을 잡았던 한 회원국 대통령이 돌연 감기를 핑계로 만남을 취소할 것을 통보해왔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한 표가 절실한 상황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소문해보니 진보좌파 성향의 해당 대통령이 사회운동을 한 이력이 눈에 띄었다. 박 시장은 즉시 대통령 비서실을 통해 “나도 학생운동 시절 민주화 시위를 하다 최루탄에 눈을 맞아 시력이 많이 손상됐다. 대통령을 꼭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넣었다.
얼마 안가 상대 측에서 즉시 들어오라는 전갈이 왔다. 박 시장이 일행들과 함께 대통령궁으로 들어서자 대통령은 “이 중에 데모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박 시장이 답하자 대통령은 “한국에도 사회운동을 한 지도자가 있다기에 누구인지 만나보고 싶었다”고 반색하며 박 시장의 손을 잡고 회담장으로 이끌었고, 협상은 술술 풀렸다고 한다.
사우디의 막강한 자금과 오일머니 네트워크의 위력을 절감하기도 했다. 박 시장이 3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의 한 나라 정상을 만나 지지를 간곡히 호소했을 때의 일이다. 흡족한 마음으로 귀국했더니 얼마 안가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전용기로 6시간 만에 해당 국가로 달려가 표심을 다시 흔들어놨다는 얘기가 들려 왔다. 허탈한 마음에 기운이 빠졌지만, 전략을 재정비했다. 이후로는 경쟁 국가에게 유치 전략이 노출되지 않도록 박 시장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정보가 새지 않도록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