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12·12사태 첫 영화 ‘서울의 봄’…‘극장의 봄’ 불러올까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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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입니다. 개봉일인 지난 22일 20만 3000여 명의 관객을 모았고, 전날도 18만 명 가까운 관객이 관람해 이틀 만에 누적 관객 수가 40만 명이 됐습니다. 이날 오후 2시 현재도 약 58%의 예매율로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서울의 봄’이 혹한기를 맞은 한국 영화계에도 봄을 불러올 수 있을지, 기자가 직접 아이맥스(IMAX) 포맷으로 감상한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2·12사태 9시간을 스크린으로…결말 아는데도 긴장감 MAX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신군부의 쿠데타를 다룬 작품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뭉친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영화는 개봉 전 공개된 예고편으로 일찍부터 화제 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전두환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민머리 분장을 하고 정우성과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정우성과 황정민은 ‘아수라’(2016)에 함께 출연한 바 있는데, 아수라를 연출했던 김성수 감독이 다시 두 배우를 불러 연출한 작품이 ‘서울의 봄’입니다. 김 감독은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에서도 정우성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영화는 예고편처럼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전두환 역을 맡은 황정민이 전형적인 악역으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연기한 정우성이 올곧은 선역으로 등장해 명확한 대결 구도를 그립니다. 극중 인물들의 이름은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꾼 것입니다. 황정민의 극중 이름은 ‘전두광’, 정우성은 ‘이태신’입니다.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바꾼 것처럼, ‘서울의 봄’은 관객에게 긴박감을 안길 영화적 상상력도 덧붙였습니다. 실제 12·12사태 때는 육군 본부의 저항이 없다시피 했지만, 작품 속 이태신과 그를 돕는 군 간부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전두광에게 맞섭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 흐름은 이렇습니다. 박 대통령이 암살당한 10·26 사건 이후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계엄사령관에,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합동수사본부장에 오릅니다. 전두광은 박 대통령 암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가의 모든 정보를 독점하며 기세등등해집니다.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까지 등에 업으니 무서울 게 없어 보입니다.

정상호는 나날이 폭주하는 전두광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원칙을 중시하는 꼿꼿한 군인인 이태신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합니다. 이어 전두광을 비롯한 하나회를 한직으로 보내 기세를 꺾어버리려 합니다.

‘나가리’ 될 위기에 처한 전두광은 하나회 핵심 회원들을 모아 작당모의를 합니다. 정상호가 박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것으로 꾸며 끌어내린 뒤 군을 장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계엄사령관을 체포하자는 얘기에 하나회는 동요하지만, 이내 ‘해볼 만 하다’고 판단하고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개성 넘치는 캐릭터, 140분 러닝타임 꽉 채우다

영화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언뜻 복잡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각 인물들의 개성을 살린 것이 주효했습니다.

우선 전두광과 이태신이라는 선악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한 점이 좋았습니다. 전두광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입니다.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도 카리스마와 독기를 내뿜는 전두광의 광기를 황정민이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정우성의 연기도 대단했습니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책임감과 군인 정신에 따르는 이태신 캐릭터에 ‘찰떡’ 같이 어울렸습니다.

이태신은 전두광의 서울 수복 작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 과정에서 긴장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속되고 전세가 이리저리 뒤바뀌면서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치밀한 수싸움 역시 몰입감을 유발합니다. 완급조절이 탁월한 서사가 큰 몫을 했습니다. 인물들을 쫓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촬영기법도 현장감을 줬습니다. 다만 극의 흐름상 몇몇 신파적 장면은 빼는 편이 나았을 것 같습니다.

조연들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 인물끼리 헷갈린다거나, 이야기가 복잡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D.P.’ 시리즈에서 군인 역할로 인기를 끈 정해인이 선역으로 등장해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깁니다. 선역에 속하는 이성민, 정만식, 김성균 등의 연기도 흠 잡을 데 없었습니다. ‘노태건’을 연기한 박해준을 비롯한 하나회 악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회 소속 장군을 연기한 배우 염동현도 눈길을 끄는 인물 중 하나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해 12월 간경화 합병증으로 별세해 이번 작품이 유작이 됐습니다.

‘서울의 봄’은 시대적 배경 탓에 10·26 사건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2020)의 속편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실제로 남산의 부장들을 제작한 하이브 미디어코프가 이번 작품도 제작했습니다. ‘서울의 봄’ 제작비는 200억여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약 460만 명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상업 영화사에 전두환 캐릭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손에 꼽습니다. 그나마 전 씨 암살을 시도하는 내용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26년’(2012) 정도가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두환 씨가 살아있었을 때 영화가 개봉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김 감독은 2019년 가을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은 뒤 1년간 고민하다가 영화를 맡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울의 봄’을 보면서 한편으로 들었던 감정은 ‘답답함’입니다. 일부 관객도 같은 감정을 호소합니다. 이태신이 수화기를 붙잡고 여기저기 지원 요청을 하지만 제 살길을 찾으려는 겁쟁이들에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장면은 분노를 부릅니다. 이태신을 방해하는 ‘똥별’들의 무능은 오늘날 군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영화는 극장가에도 봄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봉 3일차인 24일 오후 4시 현재 CGV 실관람객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골든에그’ 지수는 9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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