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설렘과 웃음…요즘 딱 맞는 로코 ‘싱글 인 서울’ [경건한 주말]
‘2000년 55%였던 미혼 청년 비중 2020년엔 82%’. 지난달 27일 <부산일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세대의 변화’에 따르면 2020년 청년세대(만 19~34세) 중 미혼은 81.5%에 달해 20년 전보다 약 30%포인트나 늘었습니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싱글 인 서울’은 이런 사회에 딱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철저히 싱글로 살기로 결심한 청년이 서서히 생각을 바꾸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공감 포인트가 설렘 포인트 못지않게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달달함 덜고 공감 더한 ‘싱글 인 서울’
서울 남자 영호(이동욱)는 누가 봐도 잘생긴 미남입니다. 게다가 돈도 많습니다. 잘 나가는 논술 강사로 일하며 ‘한강뷰’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호는 싱글로 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영호는 그냥 혼자 사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깔끔한 집안 인테리어와 그에 걸맞은 정돈된 전자기기에서 그의 깐깐한 성격이 엿보입니다.
영호는 심지어 “혼자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진화한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싱글로 사는 덕에 연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는 일상에서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약속이 있다”며 혼자 퇴근하더니 고깃집에서 ‘혼밥’을 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매순간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내립니다. ‘혼영’을 하더라도 먹고 싶은 맛의 팝콘을 골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영호는 싱글 라이프를 풍성하게 해줄 취미도 즐길 줄 압니다. 사진과 글이 대표적입니다. 글을 제법 쓰는 영호는 SNS에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합니다.
그런 영호에게 소규모 출판사 ‘동네북’이 에세이 출판을 제안합니다. 미국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는 싱글 작가들과 함께 ‘싱글 라이프 에세이’를 만들어보자는 내용입니다.
이곳에서 영호는 뜻밖의 지인을 마주합니다. 대학 시절 후배였던 현진(임수정)이 출판사 편집장이었던 겁니다. 현진은 일은 똑부러지게 잘하지만, 일상에선 칠칠치 못한 구석이 있습니다. 제일 허술한 분야는 ‘연애’입니다. 속칭 ‘도끼병’이 있는 현진은 단순한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하고 ‘흑역사’를 마구 쌓아온 허당입니다.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영호와 현진은 첫 만남부터 삐걱거립니다. 까칠한 영호는 글의 편집 방향을 두고도 현진과 자주 충돌합니다. 그러나 어딘가 허술한 현진에게 영호는 차츰 마음이 끌립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싱글 인 서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실적이고 잔잔한 우리네 이야기…‘한 방’ 없는 점은 아쉬워
‘싱글 인 서울’은 여타 로맨스 영화처럼 뻔한 연애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습니다. 잘 생기고 돈 잘 버는 영호 캐릭터는 현실과 동떨어지긴 했지만, 속박보다 자유를 갈망하며 솔로를 택했다는 이야기에 ‘N포 세대’가 공감하기 쉽습니다.
영호의 ‘첫사랑’ 이야기에도 공감할 요소가 많습니다. ‘책임지겠다’는 공허한 약속이나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연애를 망친 영호의 과거는 우리 모두의 과거이기도 합니다.
영호와 현진의 ‘썸’도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서로의 SNS를 보며 바보처럼 미소를 짓거나 카톡을 보낼까 말까 썼다 지우며 고민하는 모습이 소소한 재미를 낳습니다.
이처럼 잔잔한 설렘 포인트 구현은 이동욱과 임수정의 튀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 덕에 가능했습니다. 갈등과 반전의 인물인 ‘홍 작가’를 연기한 이솜도 특유의 매력을 바탕으로 활약했습니다.
소소한 유머도 재미를 더합니다. 일부 로코 장르에서 볼 수 있던 작위적 코미디 대신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로 몰입을 해치지 않고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극중 출판사의 대표 진표(장현성)와 현진의 동료 직원 윤정(이미도), 예리(지이수), 현진의 친구 경아(김지영) 등 조연들이 각자 맡은 캐릭터를 과하지 않게 소화해낸 덕입니다. 특히 신입 직원인 병수를 연기한 배우 이상이는 감초 역할로 높은 웃음 타율을 뽐냅니다.
다만 설렘이든 웃음이든 ‘확실한 한 방’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설렘이 폭발하는 뜨거운 로맨틱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은 모호한 메시지도 호오를 가를 수 있습니다. 영호는 “혼자여‘도’ 괜찮아”가 아니라 “혼자여‘서’ 괜찮아”라고 말하는 싱글 예찬론자입니다. 그런 영호가 현진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또 결국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뉘앙스의 결말이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박범수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저는 싱글일 때도 많이 성장한 것 같고, (아내와) 함께일 때도 성숙한 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 “싱글이냐 커플이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평소 기자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즐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싱글 인 서울’은 뻔한 연애서사 대신 잔잔한 설렘과 재미를 앞세워 전체적으로 담백한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연말 극장에서 보기 좋은 따뜻한 영화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 없습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