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통공사 퇴거 통보… 10년 ‘민락 인디 성지’ 불 꺼진다
교통공사 “임대수익 등 고민”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 문 닫아
청년문화 육성 시 의지 빛바래
부산문화재단도 후속 대책 못 내
인디밴드·극단 등 19팀 나가야
부산 유일의 청년 대중예술 지원 플랫폼인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센터장 김종군)가 10년을 가꿔 온 공간에서 이달 말 퇴거한다. 부산문화재단과 부산교통공사 사이에 체결한 계약이 더 이상 연장되지 못하고 종료되는 데 따른 결과다. 갈 곳이 마땅찮은 인디밴드와 소규모 청년극단의 경우, 또다시 연습실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할 처지다. 부산 지역 인디 기반의 예술가 인큐베이팅과 입주 단체 창작 활동 지원에도 차질이 생길까 우려된다. 경전철 사상역 인근에 부산문화재단에서 직영하는 또 다른 부산청년플랫폼 ‘사상인디스테이션’이 있지만, 거긴 상설 공연장 비중이 크다.
6일 부산문화재단과 부산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도시철도 2호선 민락역 내에 2013년부터 자리 잡았던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가 오는 31일 계약 종료에 따라 공간을 비워줘야 한다. 현재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는 부산문화재단의 위탁을 받은 ‘락인코리아’가 운영 중이다.
부산문화재단 청년문화팀 관계자는 “계약 만료일(8월 31일)을 앞두고 교통공사 측에 몇 차례 연락을 취했다. 10년간 사용해 왔지만 매번 재계약 절차를 거쳤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더 이상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사정사정해서 2023년 사업 만료 시점인 12월 31일까지 사용 기한을 연장한 상태다.
계약 종료 사유와 관련, 부산문화재단 측은 “지난 7월 14일 교통공사 담당자로부터 적자 폭이 커지면서 모든 임대시설에 대한 재감정을 통해 임대수익을 올려야 하는 데다 한 단체가 10년이나 장기 사용하는 것도 무리라고 판단해 계약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위탁 운영하는 락인코리아는 교통공사 측에 최초 계약금 약 4000만 원(월 임대료 약 100만 원)을 지불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측은 “수익성 악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으며, 10년간 한 단체에만 공간을 제공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일단 계약 종료한 뒤 추후 공간 활용 여부는 고민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지난 8월 31일이 계약 만료이지만 올해 예정된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12월 말까지 기한을 연장해 줬다”고 밝혔다.
락인코리아 관계자는 “지금도 공짜로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임대료가 저렴할 순 있다. 장기 사용 문제만 하더라도 10년이라는 세월로 청년 인디문화의 상징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줬는데 정말 아쉽다. 차라리 임대료를 올려 달라고 하면 협의라도 해 볼 텐데 계약 기간이 만료됐으니 무조건 비우라고 한다. 답답할 노릇이다. 당장 교통공사에서 사용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니 혹시라도 염두에 둔 업체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200평에 달하는 이 공간은 연극과 춤, 노래, 안무 등 연습과 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연습실(3실), 대형 밴드부터 클래식 소형 오케스트라 합주가 가능한 밴드 합주실(2실), 피아노 및 흡음 처리가 된 벽으로 자유롭게 음악 작업이 가능한 개인 연습실(4실), 회의가 가능한 밴드 휴게실, 전시와 게시판 등 다목적 활용이 가능한 복도 공간, 장시간 연습과 제작 활동이 가능하도록 샤워실 등을 갖췄다.
올해 입주 단체는 총 19팀으로 버닝소다, 밴드기린, 수연, 옐로은, 보수동쿨러, ddbb, 야자수, 이너사이드시그널 같은 인디밴드(재즈 록 힙합 싱어송라이터 등)와 극단 율도, 물음피 등 청년 창작극단(3공간)이다. 상주 단체 개념은 아니고, 작품을 만들 때 연습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우선 권한을 준다.
지금까지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는 △기획 공연 프로그램:시민들과 함께 하는 인디(Indie)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한 페스티벌·공연 초청 △부산지역 인디밴드, 청년 창작극단, 힙합, 재즈 등 입주 단체 앨범 및 공연 제작 지원 △지역 공연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민락공연기획단’ 2년간 총 23명 배출 △센터 내 공간 전시 및 유튜브 채널 ‘민락온에어’을 통한 영상 콘텐츠 제작 △다양한 시민교육과 공간 나눔을 통해 지역민과 함께하는 인디센터 운영 등을 해 왔다.
김종군 센터장은 “연간 예산이 임대료와 인건비 포함해 1억 5000만 원 정도인데 들인 돈에 비해 하는 일은 많은 편”이라며 “공간 사용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1년 3~4개 해외 페스티벌과 연계해 초청 공연을 보내거나 음반·공연 제작 창작 지원을 하는 것도 한몫했다”고 밝혔다.
최근 입주 단체 수상 실적으로는 ‘소음발광’이 지난해 제19회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록음반상·최우수 록노래상 2관왕 수상한 것 외에 ‘보수동쿨러’가 최우수 모던록 음반 노미네이트(제19회), ‘검은잎들’이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 노미네이트(제19회), ‘밴드기린’이 지난해 제1회 부산버스킹페스타 대상, ‘옐로은’이 지난해 DGB대구은행 열광 버스킹 대상·제4회 청춘대학가요제 금상·한중청년교류가요제 1등, ‘칩앤스위트’는 지난해 영도 제1회 아마추어밴드대회 대상을 받았다.
또한 ‘버닝소다’는 마마무 부산 콘서트 오프닝 영상, 그린플러그드 경주, 스프링스크림(대만), 쇼미더부산(홍콩)에 출연했으며, 수연·옐로은은 올해 ‘최백호의 낭만이즈백’ 영상 및 음원 제작에 참여했다. ddbb, 야자수, 보수동쿨러는 폴킴, 카더가든과 함께 2023년 제1회 빅루프뮤직페스티벌 출연했으며, 이너사이드시그널과 밴드기린은 한일교류 콘서트 ‘영남통신사’ 상상마당부산 및 일본 공연, 극단 율도는 창작극, 단편영화 등을 제작하고, 물음피는 입주 단체 1기로 창단 초기 참여 후 지난 11월 공연까지 총 33회 공연을 제작했다. 지난해는 창단 10주년을 맞아 ‘물음피서울’이라는 브랜드로 서울 대학로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입주 단체들과 간담회를 가진 김 센터장은 “입주 단체들도 상실감이 크다”면서 “무엇보다 인디밴드 문화가 서울 다음으로 부산에 확산돼 있고, 시에서도 지역 청년의 역외 유출 문제를 고민하면서 청년문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지만 시 출자출연기관마저 외면해 단 하나 있는 공간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만에 하나 새로운 곳을 찾더라도 기존 운영 예산 외에 시설 철거와 새로운 장비 세팅까지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갈 텐데 아직까진 시나 문화재단에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