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라스트 모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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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언쟁에서 무슨 만족을 얻고자
그렇게 핏대를 세웠을까.
상대방이 뱉은 어떤 단어에 내가 울컥했고,
그때부터 목청이 높아졌던 것 같다.
대척점이라는 것은,
마주 볼 수는 있겠지만,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어떤 모임이 있어, 술자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나름 점잖은 자리라 점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점잖게 허허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들어갈수록 대화도 다양해졌다. 올곧은 삶을 살았다는 어떤 인물을 이야기하고, 어려운 경제를 걱정하더니, 양극화된 사회문제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을 한탄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침을 튀기기도 했다. 술잔이 자꾸 비워지고 대화는 점점 열기를 더했다.

테이블에 흘린 술이 흥건해지고 두 번째로 드나드는 화장실에 걸린 거울을 무심코 보고서야 문득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상기된 얼굴에 할 말을 다 못해 불만인 듯한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 언성을 높이게 했던, 대화하는 내내 마주 보았던 상대의 얼굴과 똑같았다. 그랬다. 우리는 서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내 생각이 옳고, 당신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서로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손을 씻으며 잠깐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언쟁에서 무슨 만족을 얻고자 그렇게 핏대를 세웠을까. 그러고 보니 상대방이 뱉은 어떤 단어에 내가 울컥했고, 그때부터 목청이 높아졌던 것 같다.

하긴, 주장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땅을 딛고 서 있다. 당연히, 그 위치의 반대편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각자의 주장이 없을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의 전자가 흐르고, 인체는 좌우 대칭이며, 내가 딛고 사는 지구도 남극과 북극이 있다. 개인마다 가치가 다르고 삶이 다른 게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테이블에 앉은 저들이 어떤 사람인가. 저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경험하여 그 느낌을 공유할 것이고, 때로는 나의 인맥이 될 수도 있는, 내 사회생활의 일부가 아니었던가. 지금이라도 적당히 마무리하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술 깨면 조금 민망하겠지만, 입장이야 서로 같다.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치 전사가 전투에 임하기 전에 얼굴에 바르는 붉은 물감처럼 비장하게 찬물을 발랐다. 정해진 대로 행동하면 그게 로봇이지 사람이겠냐며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한때 화젯거리였던 초전도체라는 물질이 있다. 임계온도 이하에서 나타난다는 마이스너 효과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본 적도 있다. 신기하긴 했지만,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건 절대 사양이다.

그렇게 정리를 끝낸 나는 모히칸족 전사처럼 머리칼을 비쭉 세우고 옷매무시를 고쳤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한 위치에 성실히 자리 잡은, 그러나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 했다.

그길로 다시 불붙은 2차전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억지의 화살이 날아왔고, 어이가 없어 말문 막히게 만드는 무논리의 말 폭탄도 코앞에서 터졌다. 물론, 나도 안전핀을 뽑아 던지고 쏘아댔다. 데굴데굴 구르며 상대를 공략했지만, 내가 공략한 위치의 대척점은 계속해서 생겨났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대척점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날, 자신이 디딘 자리만을 옹호하던 전사는 장렬히 전사했다. 그러나 상대도 성치는 않았으리라. 대척점이라는 것은, 마주 볼 수는 있겠지만, 점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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