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맥’에서 본 ‘나폴레옹’…웅장함으로는 정복 못 한 지루함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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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출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당일 밤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그 유명한 ‘용아맥’(CGV용산점 아이맥스관)을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용아맥 스크린 크기는 가로 31m, 세로 22.4m로 CGV서면점 아이맥스관(가로 19m, 세로 11.2m)의 3배가 넘는 넓이를 자랑합니다. 마침 이튿날인 6일 ‘나폴레옹’이 개봉해 이른 시각 관람하고 부산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인간 나폴레옹’의 대서사시…대규모 전투장면 압권

책으로 배운 나폴레옹은 위대한 황제입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은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그러나 영화 ‘나폴레옹’ 속 그는 인간적입니다. 전투를 앞두고 긴장해 벌벌 떨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이전엔 상상해본 적이 없는 장면입니다.

‘에일리언’(1979), ‘델마와 루이스’(1991), ‘글래디에이터’(2000), ‘블랙 호크 다운’(2001) 등 숱한 명작을 낳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담은 대서사극입니다.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은 당시만 해도 하급 포병 장교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 항구 도시 툴롱을 점령한 영국군을 뛰어난 전략으로 몰아내는 공을 세워 장군이 됩니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툴롱 전투신에선 스콧 감독 특유의 현실적인 연출이 돋보입니다. 이후로도 등장하는 몇몇 전투신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관람 포인트입니다. 제작비로만 1700여억 원이 투입된 작품답게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상대로 기만술과 매복 작전을 펼치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도 흥미진진합니다. 꽁꽁 언 호수 위에 대포를 쏴 적들을 수장시키는 전략을 재현한 신은 한 컷 한 컷이 수작입니다.

클라이맥스는 나폴레옹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긴 워털루 전투입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정면 충돌하는 대규모 전투신은 ‘반지의 제왕’ 못지않은 압도감을 안깁니다. 국내 최대 스크린을 자랑하는 ‘용아맥’에서 감상하니 과연 장관입니다. 군복과 제복 등 각종 의상을 비롯한 디테일도 대단합니다.

근대 유럽을 그대로 재현해 어색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 그 유명한 황제 대관식 장면은 대단히 화려합니다. 다만 아이맥스관에서 보더라도 화면비는 일반적인 시네마스코프 비율(2.39:1)이라 화면 정보량에서 차이는 없습니다.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드라마인가 전기영화인가…애매한 장르에 단조로운 구성

전투신과 미술을 제외하면 그리 눈길을 끌 만한 장면이 없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루함마저 느껴지는 대목까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려 한 욕심이 원인인 듯 합니다.

영화에서 나폴레옹은 다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위대해지고 싶어하는 야망가이자 뛰어난 전략가, 그리고 로맨티스트입니다.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유명한 미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조제핀(바네사 커비)과 결혼했습니다. 6살 연상의 조제핀은 그야말로 팜므파탈입니다. 불륜을 저질러 불리한 입장이 되고도 얼마 못 가 남편을 휘어잡습니다. 조제핀을 향한 나폴레옹의 사랑은 애절합니다. 조제핀에게 접근하는 남자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전장에서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한 뒤에도 잊지 못합니다.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와 바네사 커비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습니다. ‘조커’(2019)로 깊은 인상을 남긴 호아킨 피닉스는 이번 작품에서도 나폴레옹의 입체적인 내면을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전투를 앞둔 지휘관에게서만 볼 수 있는 긴장감과 흥분을 눈빛만으로도 보여줄 수 있는 명배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조제핀 역의 커비도 팜므파탈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문제는 단조로운 전개와 애매한 무게중심에 있습니다. 전기영화라면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을 만한 장치를 심어둬야 합니다. 올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같은 경우 오펜하이머가 짊어져야 했을 책임감이나 고뇌와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서는 인물의 감정에 이입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습니다. 나폴레옹의 일생을 그저 시간순으로 나열한 듯한 플롯이 몰입을 방해합니다. 시대적 배경 탓도 있습니다. 구시대적인 애국심과 가부장적 사고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찌질함’을 강조한 스콧 감독의 인물 해석 탓인지 극중 나폴레옹에게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끼기도 어려웠습니다.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소니픽쳐스 제공

게다가 조제핀과의 사랑과 갈등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여기에 나폴레옹 전쟁 전후의 복잡한 프랑스 역사와 외교전까지 녹여내 집중력이 분산됩니다. 역사물인지 드라마인지 전쟁영화인지 장르가 불명확하고, 전반적으로 애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영화 러닝타임은 2시간 38분에 달하는데도 서사가 뚝뚝 끊기는 인상마저 듭니다. 아니나 다를까, 애플TV+를 통해 공개될 감독판은 무려 4시간 10분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위질’을 많이 한 탓에 편집이 매끄럽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고증이 완벽한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툴롱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는 전략 같은 건 없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포를 발사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정적인 장면들도 호오를 가를 요소입니다. 15세 관람가이지만 정사신이 많고 일부 잔인한 묘사가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막은 ‘맞혀’라고 적어야 할 부분에서 ‘맞춰’라고 쓰는 등 일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리들리 스콧은 ‘마션’(2015),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 등 최근까지도 좋은 작품을 낸 명장입니다. 그런 그의 신작이 혹평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요. 기자는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스콧 감독은 오래 전부터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수년 전 ‘아직 만들지 못한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폴레옹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담고 싶었던 것이 너무 많았던 탓에 분량과 완급을 조절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크게 세 전투로 나눠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전략이 참 적절했습니다. 김 감독이 이순신 장군의 대서사시를 연출하겠다며 명량대첩, 한산도 대첩, 노량해전을 한 작품에 욱여 넣었다면 지금처럼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마침 ‘명량’(2014)과 ‘한산’(2022)의 뒤를 이을 마지막 작품 ‘노량’은 오는 20일 개봉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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