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K를 위하여
오금아 콘텐츠관리팀 선임기자
냉동김밥 품절 등 K푸드 인기
배경에는 K드라마·K팝 ‘존재’
지난달 도쿄서 한국책 축제도
세계 매료시킬 K콘텐츠 육성
바탕 되는 문화예술 지원 중요
‘이것’ 관련 해시태그가 포함된 틱톡 영상 수가 13억 개를 넘었다. 지난주 열린 틱톡 2024 트렌드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김밥’ 이야기다. 8월 한인 크리에이터가 틱톡에 냉동김밥 소개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이 주목받으며 한동안 미국에서 냉동김밥 품절 대란이 일어났다. 냉동김밥을 찾아 현지 마트를 방문한 다른 이가 올린 영상에서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파전, 불고기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K냉동식품이 소개됐다. 화제의 냉동김밥을 포함해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끈 K푸드가 최근 국내에 역수입돼 한국 소비자와 만나기도 했다.
K푸드가 해외 시장에서 날개를 달았다. 저칼로리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끄는 김 수출액은 올해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라면도 잘 나간다. 10월까지 수출액이 지난해 전체 라면 수출액보다 많다. 영국 런던에서는 김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는 소식이 들리고, 한국 음식 인기에 된장·고추장 등 전통 장류와 각종 소스류 수출도 늘어났다.
K푸드의 선전 배경에는 K팝·K드라마 같은 K콘텐츠가 있다. 한국식 치킨·짜파구리·달고나 등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 음식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지민 같은 K팝 스타가 예능이나 SNS에서 먹는 라면이 관심을 끌었다. ‘파이어 누들 챌린지’ 같은 SNS 놀이 문화도 한몫했다. K드라마 팬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더 글로리’의 주인공이 먹던 김밥을 실제로 먹으며 즐거워했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무빙’ 덕에 서울 남산돈까스 가게에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났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한국산 콘텐츠 성장세는 웹툰에서도 두드러진다. ‘2023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외에서 소비 비중이 가장 높은 한국 문화콘텐츠는 웹툰과 뷰티이다. 한국 웹툰의 해외 소비는 꾸준히 증가한다. 올해 K웹툰은 일본에서 사상 최고 거래 규모를 기록하는 동시에 북미와 유럽까지 시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K’라는 수식어를 널리 알린 K팝의 인기도 여전하다. 중국 시장 축소에도 올해 10월까지 음반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늘었다.
세계 속에 우뚝 선 한국 문화콘텐츠 관련 기사 중 K문학이 눈에 들어왔다. 11월 25~26일 도쿄 책방 거리 진보초에서 ‘K북 페스티벌 2023’이 열렸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 K-북진흥회가 함께하는 행사로 5회를 맞이했다. 국경, 언어, 장르를 넘어 K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올해는 김소연, 김초엽, 오은, 황보름 등 한국 작가들이 직접 일본 독자와 만났다. 한국 출판사 5곳도 부스를 마련해 한국 책 알리기에 힘을 보탰다. 현장을 찾은 한 출판 관계자는 사인회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등 행사장에서 더위를 느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몰렸다고 전했다.
10년 전 일본 파견 근무 때 ‘기지개 켜는 문학 한류’ 관련 취재를 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일본에서 K문학의 위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한국 문학의 ‘욘사마’로 불리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돌풍이 계기가 됐다. 소설에서 시작된 관심은 에세이 등 비소설 분야로 다양화되는 추세이다. 부산에 거주하며 한국 책을 번역하는 일본인 번역자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높은 수준이 이런 흐름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 번역자는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지원 사업이 더 다양한 장르, 더 많은 작품이 해외로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고, 백희나의 그림책 〈알사탕〉은 이탈리아 프레미오 안데르센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정보라의 〈저주토끼〉 천명관의 〈고래〉가 주요 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한국 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활약에도 정부가 내년도 출판·문학 관련 예산을 삭감해 현장에서는 걱정이 많다. 최근 문체부 장관이 문학계 인사들을 만나 “내후년에는 순수예술 분야에 상당한 예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으니 지켜볼 일이다. 대신 문화정책에 있어서 산업적 측면만 너무 강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많은 K열풍에는 과제가 따른다. 팬덤 중심의 K팝은 확장성을 고민하고 있으며, K드라마나 K웹툰은 글로벌 콘텐츠로서 다양한 인종·국가를 포용할 수 있도록 문화다양성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세계를 매료시키는 콘텐츠는 하루아침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학, 미술, 무용, 연극, 영화, 음악 등 생각과 마음을 흔드는 문화예술 경험이 쌓인 곳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자라날 수 있다. 기초 없이 응용은 없다. 내일의 K를 위해, 기초가 되는 오늘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이유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