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예술의 섬' 나오시마와 이기대
이현우 콘텐츠랩 본부장
세계적 명소 된 일본 외곽의 작은 섬
영도 크기 외딴섬에 관광객 물밀 듯
버려진 공간 예술 프로젝트로 되살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섬이 곧 작품
이기대도 비슷한 풍경과 스토리 품어
해안 구릉 전체를 예술의 공간으로
일본 시코쿠의 작은 섬 나오시마. ‘예술의 섬’으로 이름난 곳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세계적 명소다. 한 해 60만~1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영국 여행 전문 잡지가 꼽은 꼭 가 봐야 할 세계 명소 7곳에도 이름을 올렸다. 나오시마 근처 작은 섬 데시마, 이누지마와 함께 예술 섬 벨트를 이룬다.
따사로운 어느 봄날 나오시마 한 마을 풍경. 황량한 시골 촌락에서 예술촌으로 우아하게 거듭난 혼무라 지구엔 사람들이 빼곡했다. 모습이 다른 전 세계인이 마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이스라엘 국기를 앞세운 수십 명의 노랑머리 유태인 무리도 눈에 띄었다. 예술 작품으로 변모한 옛집과 신사에 들어서는 이들의 눈빛엔 설렘이 가득했다. 나오시마에서 카페리로 이어지는 데시마. 미술관 전체가 하나의 독특한 작품인 ‘데시마 아트 뮤지엄’으로 이어지는 도로엔 자전거를 탄 관광객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미술관 앞 풀밭 곳곳에 깔린 방석은 외국인들이 다 차지하고 앉았다. 유럽이나 북미 어느 곳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나오시마는 한때 버려진 외딴섬이나 다름없었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가동된 미쓰비시 구리제련소의 아황산가스 등으로 주변 섬 나무까지 말라비틀어졌다. 그러다 1987년부터 시작된 예술 프로젝트 덕에 이곳은 반짝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역 기업가 후쿠다케 소이치로와 세계적 천재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손을 잡고 섬 전체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글로벌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나오시마 넓이는 14.22k㎡에 불과하다. 부산 영도와 섬 크기가 거의 같다. 인구는 영도보다 한참 적은 3000여 명 수준. 일본 4개 본섬 가운데 가장 작은 시코쿠 가가와현에 속한 시골 섬이다. 작은 외딴섬이 세상의 눈길을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예술 그 자체다. 섬 일부에 예술 공간이 비집고 들어간 게 아니라 섬이 하나의 작품과도 같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추(지중)미술관, 세계적 거장이자 안도의 친구 이우환 작가 작품이 모인 이우환미술관, 하룻밤 묵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되는 별천지 베네세 하우스 등이 서로 호흡을 맞춘다. 나오시마 관문 미야노우라항 페리 터미널은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작품이다. 터미널 바로 옆에선 쿠사마 야요이 작가의 유명한 작품 ‘빨간 호박’이 섬을 오가는 손님을 맞고 배웅한다. 더불어 이들 예술 공간과 예술품은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는다. 섬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지추미술관은 섬 밖으로 외관을 드러내지 않는다. 산등성이를 따라 땅속에 숨은 듯 설계됐다.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까진 숲밖에 보이지 않는다. 데시마의 아트 뮤지엄은 주변 풍경에 스며든 듯한 모습을 취한다.
나오시마를 떠올리며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를 바라본다. 두 공간은 닮은 점이 여럿 있다. 나지막하게 펼쳐진 이기대 해안 구릉 풍경은 섬과 흡사하다. 환경 오염의 아픔을 겪은 점도 비슷하다. 이기대 초입 동생말은 지금의 용호동 LG메트로시티 아파트 부지에 있었던 동국제강이 제련 찌꺼기(슬래그)와 석면 등의 산업폐기물을 갖다 묻은 곳이다. 이기대 15만 8000여㎡ 부지는 1951년부터 40여 년 동안 군 작전지구로 묶여 시민 출입이 불가능했다. 여러 진통 끝에 지금 이기대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산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올 상반기 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바로 이기대다.
비슷한 풍경과 스토리를 갖춘 나오시마처럼 이기대를 가꿔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바다를 낀 이기대 구릉을 ‘예술의 해안’으로 꾸며볼 수는 없을까. 독특한 공간과 작품, 바다와 숲이 연이어 어우러지는 거대한 자연 미술관. 생각만 해도 설렌다. 부산시가 최근 ‘이기대 예술공원 기본계획’ 수립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기대 자체가 예술이 되는 공원’ ‘자연환경 속에 녹아든 품격 있는 미술관’ ‘숲길을 따라 이어지는 예술문화 콘텐츠’ 등을 이기대 예술공원 콘셉트로 제시했다. 우리가 늘 해 온 것처럼 근사한 전시관 하나 턱 앉혀 놓고 말아선 곤란하다. 홀로 동떨어진 대형 문화시설은 금세 빛을 잃는다.
나오시마와 같이 이기대 전체가 예술작품과도 같은 공원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부산문화회관 부산시립박물관 유엔기념공원 등 이른바 남구 문화벨트로 흐름이 이어지는 매력적인 예술의 해안 숲으로 가꿔 보자. 이기대가 전 세계인이 몰려드는 으뜸 관광지가 되지 말란 법 있나.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