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 ‘불출마’ 카드에 호평, 미국식 ‘손가락 따옴표’ 눈길…한동훈 ‘정치인 데뷔전’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통해 정치인으로 첫 메시지 발신
전격적인 총선 불출마로 당 쇄신·이재명각 차별화, 당내 긍정 반응
신중·차분한 화법으로 의미 전달 주력, ‘손가락 따옴표’는 “좀 이질적” 반응도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통해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첫 행보를 시작했다. 이날 한 위원장의 정치권 데뷔전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주변에는 많은 지지자들이 몰려 보수 정치권 최대 기대주가 된 한 위원장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한 위원장의 이날 연설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전격적인 ‘총선 불출마’ 선언이었다. 비대위원장이 되기 전까지 당 안팎에서는 한 위원장의 지역구 험지 출마, 비례대표 출마 등 출마를 가정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언급됐지만, 한 위원장은 이날 “총선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며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자신의 비대위원장직 수락이 전적으로 공적인 목적이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의 불출마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날 수락 연설에서 전격적으로 불출마 카드를 던질 줄을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위원장이 본격적인 당무에 앞서 불출마를 전격적으로 선언한 것은 총선 승리의 필수 조건으로 여겨지는 ‘인적 쇄신’ 작업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읽힌다.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이 대규모 ‘물갈이’의 신호탄이 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 위원장이 이날 수락 연설에서 ‘헌신’을 총 다섯 차례 언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당내 기득권의 희생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 위원장은 실력을 기준으로 한 공천의 공정한 경쟁을 약속하며 결과에 따른 당내 반발 등의 역풍 가능성도 사전 차단했다. 한 위원장의 불출마는 당내 2선 후퇴 요구를 일축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각을 세우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첫 행보부터 자기 희생을 통해 기득권에 집착하는 소속 의원들에 경각심을 줬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이 대표와 차별점도 드러냈다”면서 “상당히 영리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한 위원장은 또 이날 연설에서 민주당 주류를 ‘운동권 특권층’으로 지칭하면서 이번 총선을 상식과 특권의 대결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상식적인 많은 국민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이 대표, ‘개딸’로 불리는 강성지지층까지 싸잡아 비판하며 선명하게 각을 세웠다. 현재의 총선 구도인 국정 안정 대 정권 심판론을 운동권 특권 청산과 정치권 세대교체론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폭주를 막는 것”이 총선 승리의 이유라고 강조하면서도 “그것만이 우리 정치의 목표일 수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위대한 대한민국과 동료 시민은 그것보다 훨씬 더 나은 정치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도 했다. 검사 출신인 자신이 비타협적인 자세로 야당 심판론만 강조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총선 승리 이후 정치 문화의 변화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어 야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실력과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책’에 방점을 찍기도 했다.
한 위원장 특유의 연설 스타일도 눈길을 끌었다. 장관 재직 시절 국회 답변 때처럼 문장 사이에 간극을 둬서 말실수를 줄이려는 신중한 화법을 그대로 사용됐다. 격정적인 표현 대신 높낮이가 일정한 목소리로 정서보다는 의미 전달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지만, 곧 다양한 손 동작을 쓰며 능숙하게 연설을 이어갔다. 특히 한 위원장은 “누가 이기는지 못지않게 왜 이겨야 하는지”라고 언급할 때 ‘왜’ 부분처럼 강조하려는 표현이 나올 때 미국식 ‘손가락 따옴표’를 연거푸 쓰기도 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시민들에게 좀 이질적인 느낌을 줄 것 같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역사적 인물의 발언, 문학작품에 나오는 표현을 인용하는 현학적인 면모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중 연설에서 했던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fear is reaction, courage is a decision)이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는 지난 19일 비대위원장을 하기엔 정치 경험이 없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소설에 나오는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주목 받아온 한 위원장은 이날 검은색 정장에 검붉은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 넥타이는 훈민정음으로 쓴 용비어천가 구절이 새겨진 것으로, 그는 법무부 장관 취임식 때도 이 넥타이를 맸다. 연설할 때는 벗었지만 당사에 들어설 때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 머플러와 갈색 백팩도 착용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