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시] 펜치가 필요한 시점 /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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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

나를 절단해 줘요

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는 레디메이드 툴이 되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요

차라리 한 끼 굶을 일을

어느 시궁창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줘요

이쪽으로 가면 강의 상류 끝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나고 싶죠

저쪽으로 가면 바다의 시작,

흰 치마를 펼쳐서라도 항해하는 게 로망인 걸요

밸런스게임은 사양할게요

이쪽으로 가면 파란 대문이 열려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녹슨 대문이 부서져 있다거나

이쪽으로 가면 왕이 되고

저쪽으로 가면 거지가 된다는 동화 같은 거 믿으라고요?

차라리 사지선다형으로 바꿔주세요

검은 셔츠와 흰 셔츠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지금은 펜치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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