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는 살아야지, 싸게” 문턱 닳는 가성비 맛집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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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짜장·짬뽕 합해 9000원
팍팍한 삶에 밥값 싼 식당 인기
착한가격업소도 다시 증가세로
가격 불문 ‘맛집 도장 깨기’ 옛말
예약 어렵던 비싼 한우집 ‘썰렁’
프리미엄 식당도 판매전략 수정

취재진이 14~15일 방문한 부산 사상구 주례동 ‘착한가격업소’ 국숫집 메뉴판(위)과 동래구 온천동 착한가격업소 중식당 메뉴판. 취재진이 14~15일 방문한 부산 사상구 주례동 ‘착한가격업소’ 국숫집 메뉴판(위)과 동래구 온천동 착한가격업소 중식당 메뉴판.

“식당을 고를 때 가격부터 봅니다.”

15일 오전 10시 30분께 부산 사상구 주례동 한 국숫집을 찾은 김지혜(69) 씨는 ‘아점’을 때우러 왔다고 했다. 식당에서는 국수가 4000원, 칼국수는 5000원이었다. 공깃밥은 무료였다. 김 씨는 “물가가 너무 올랐는데 그 중 식비가 가장 걱정”이라며 “5000원 이하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국숫집도 저렴한 식사를 찾는 고객에 맞추느라 애를 쓴다. 이 국숫집은 직접 면을 뽑고 부전시장 같은 큰 시장에서 부재료를 찾아 재료비를 줄인다. 주인 성수한(57) 씨는 “근처에 고령층이 많이 살고 동서대·경남정보대 학생이 많이 찾으니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2년 전만 해도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맛집을 찾는 ‘맛집 도장 깨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최근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다시 ‘가성비 식당’이 뜨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식당과 주점으로 손님 발걸음이 이어진다. 식당들도 가격을 낮춘 메뉴를 내놓으며 손님 잡기에 나섰다.

동래구 온천동 한 중식당에는 요즘 손님이 몰려들고 있다. 탕수육 정식이 인기다. 탕수육과 짜장면 짬뽕 밥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데 가격이 9000원이다. 짜장면 한 그릇도 6000원이어서 싼 편이다. 손님 정현숙(56) 씨는 “여기는 가격은 저렴해도 맛까지 좋아 단골이 됐다”고 했다. 주인 조창현(60) 씨는 “욕심을 덜 부려서라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수일 전 부산 중구 중앙동의 식당가에서도 분식집 같은 가성비 식당 앞에는 가게 앞에 손님이 줄을 선 모습이었다. 인근 메뉴 하나에 1만 원 이상하는 식당에는 빈 테이블도 보이는 것과도 대조를 보였다.

최근에는 ‘착한가격업소’도 다시 늘고 있다. 착한가격업소는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려는 식당이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지정한다. 부산의 경우 2020년 658개이던 착한가격업소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2022년 606개로 줄었다. 하지만 최근 고물가 속에 지난해 656개로 다시 늘었다.

고가 식당 인기는 한풀 꺾였다. 해운대구 우동 한 한우집은 최근 저녁 예약이 20%가량 줄었다. 연말만 해도 예약 잡기가 어렵던 식당이었다. 김경애(53) 씨는 “손님들도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회사 단체 예약도 줄어 고물가와 경기침체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다 메뉴를 변경하거나 가격 인하를 검토하는 등 판매 전략을 수정한 업소도 적지 않다. 해운대구 우동 한 스시집은 지난해 10월 1인분에 10만 원으로 판매하던 오마카세 메뉴를 없애고, 1인분에 2만 5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판스시 집으로 가게를 재단장했다. 부산진구 부전동 한 장어집도 손님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점심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이다.

고급 식당 인기가 시들고, 저렴한 식당에 손님이 몰리는 건 고물가 여파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 물가 상승률은 6.0%였다. 2022년을 제외하면 1994년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부산대 경제학과 김호범 명예교수는 “오마카세나 맛집 탐방처럼 비싼 돈을 내서라도 취향에 맞는 음식 소비가 유행이었다가 고물가로 가성비 좋은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며 “당분간 싼 곳으로 몰리는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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