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먼 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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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1921~1968)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시집 〈김수영 전집〉(2003) 중에서

아픈 것은 깨어나는 것이다. 아픈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의 공간과 ‘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의 시간 속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띤 행위로 나타난다. 아픔은 무료한 일상을 깨뜨리며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내가 어디에 존재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좌표다.

아픔만큼 자신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아프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소비자본주의의 삶이 물질에 대한 중독을 통해 감각의 마비를 가져온다. 삶의 민낯인 고통을 외면케 하여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하여 아파야 한다. ‘다시 몸이 아픈’ 것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찾아야 한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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