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명체 속 우리, 한 목숨이죠”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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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원 신용철 학예실장
‘시골큐레이터 표류기’ 출간
민중미술에 깊은 애정 담아



신용철 민주공원 학예실장이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를 들고 있다. 신용철 민주공원 학예실장이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를 들고 있다.

“서울이 중심이라는 생각은 허깨비 같은 것이다. 부산이 시골이면 서울도 시골 아닌가. 모든 시골을 가로질러 예술동무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마음을 책에 담았다.”

민주공원에서 2011년부터 일해 온 신용철 학예실장이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를 출간했다. 스스로를 시골큐레이터라고 칭하고, 책 제목까지 붙인 이유는 역설적으로 서울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였다.

민주공원은 1000점이 넘는 그림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우리 시대의 일, 꾼, 삶을 묘사한 민중미술 그림이다. 신 실장은 자신을 “이 그림목숨들에게 늘 이야기밥을 주면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그리고, 때때로 그림이 제 얘기를 할 수 있게 그림마당을 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에는 49편의 그림글이 실렸다. 2017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부산민예총 <함께가는 예술인>의 표지에 연재한 ‘함께가는 그림틀’에 쓴 73편의 글 중에서 추린 것들이다.


‘시골큐레이터 표류기’. ‘시골큐레이터 표류기’.

그래피티를 그리는 구현주 작가의 ‘청년상’에 대해 쓴 ‘늘 사랑하고 늘 상상하여 늘 청년하라’는 글은 통쾌하다. 구 작가는 면접표를 가슴에 달고 잔뜩 움츠러드는 청년의 모습을 그렸는데,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신 실장은 “반짝 꾀를 내어 움츠러든 몸집을 뻥튀기해서 6미터짜리 크디큰 청년의 모습으로 둔갑시켰다. 면접관은 청년 발 아래 놓여 눈을 치어다봐야 한다. 청년의 몸집을 키운 것은 상상의 힘으로, 늘 상상해야 늘 청년할 수 있다”라고 적었다.

탈핵을 주제로 한 방정아 작가의 ‘핵몽전’과 관련해서는 잦아지는 지진 사태를 우려했다. 그는 “경주가 흔들렸고 포항이 흔들렸고 한반도가 들썩거렸다. 우리 땅은 안전한 줄 알았다. 지구라는 온생명 안에서 우리는 한 목숨이다. 우리의 아궁이들은 서로 이어져 있고, 우리의 발바닥은 하나의 뿌리로 얽혀 있다. 우리는 함께 다 같이 흔들리고 있다”라고 썼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전’ 중에서 이선일 작 ‘추락하는 사람들’. 민주공원 제공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전’ 중에서 이선일 작 ‘추락하는 사람들’. 민주공원 제공

이 책은 민중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민중미술을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한 미술운동으로 깎아내리거나 형상미술이라는 허울로 물타기 하더니, 이제는 잘 알려진 민중미술 일부의 사례를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과 체계 안으로 애써 넣으려는 조짐도 보인다”고 경계했다. 한편 민주공원에서는 부울경 등 전국 각지에서 34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국노동미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전’이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물감이 흘러내린 정물화는 젊은 노동자의 유품인 컵라면을 환기시키고, 도시 풍경을 그린 유화는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를 기억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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