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쉼터 ‘공개공지’가 쓰레기장·주차장으로…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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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800곳 점검서 150곳 적발
설치 땐 용적률 등 인센티브 혜택
점검 시에만 개방 ‘꼼수’ 활용도
시, 새 규정 추가 조례 개정 나서

부산 연제구의 한 공개공지. 잔디가 말라 죽은 채 방치돼 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부산 연제구의 한 공개공지. 잔디가 말라 죽은 채 방치돼 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도심 쉼터로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개공지가 관리 미흡 등으로 본래 기능을 잃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부산시는 공개공지 세부적 규정을 명시한 조례 개정과 단속 수위를 높여서 공개공지를 시민 쉼터로 회복하겠다고 나섰다.

17일 오전 10시께 부산 연제구 연산동 한 숙박 시설. 입구 근처에 ‘공개공지 안내’라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표지판은 공개공지에 천연 잔디와 의자 등 시민 쉼터가 조성됐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의자는 온데간데없고 천연 잔디는 모두 말라죽어 흙이 노출돼 있었다.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연산동의 한 거주 시설 공개공지 모습도 비슷했다. 공개공지라고 표시된 토지에는 긴 의자, 조경 등 공개공지에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 대신 자전거 거치대만 놓여 있었다. 이마저도 사실상 이곳 주민만 사용하는 시설로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개공지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17일 부산시에 따르면 16개 구·군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 동안 부산 시내 공개공지 800곳을 점검했다. 공개공지 훼손과 다른 용도 사용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공개공지는 쾌적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건축법과 조례에 따라 일정 용도와 규모 이상 건축물에 설치하는 소규모 휴식 공간이다. 건축물에 일종의 공공성을 부여한 것으로 시민 누구나 이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공개공지를 설치하는 건축물에는 용적률·높이 등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그러나 다수 공개공지가 휴식 공간 기능을 잃어버린 것으로 파악됐다. 시 점검 결과에 따르면 공개공지 156곳이 영업 행위, 물건 적치 등 이유로 적발됐다. 공개공지를 쓰레기장, 주차장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의자 등 휴식 시설을 갖춰 놓지 않은 것이다. 본래 기능을 상실한 공개공지의 총면적은 2만 4858㎡으로, 축구장 3.4개 넓이에 달한다.

공개공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문제는 장기간 반복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도 150곳이 공개공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다 적발됐다.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시 감사위원회가 실시한 특정감사 때도 전체 공개공지 40만㎡ 중 42%인 17만㎡ 면적의 공개공지에서 물건 적치, 출입 차단시설 설치 등 위반 사항이 나왔다.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시민 의식 부족과 빈약한 관리 체계 등이 꼽힌다. 시와 기초지자체는 매년 두 차례 공개공지를 점검하고 위반 사항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다. 시정명령이 반복되면 이행 강제금 등 강력한 조처가 잇따른다.

하지만 특정 점검 기간에만 공개공지를 개방하다가 점검 직후에 주차장, 쓰레기장 등으로 되돌리는 경우에는 적발이 쉽지 않다. 시정명령을 받더라도 곧바로 공개공지를 원래대로 복구하면 실제 이행강제금 부과까지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결국 점검 기간 때만 시늉을 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부산시는 공개공지를 명시한 ‘부산광역시 건축조례’ 개정 등으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섰다. ‘공개공지 최소 폭은 5m 이상이어야 한다’ 등 바뀌는 조례에는 공개공지의 면적·위치·폭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새롭게 추가될 예정이다.

부산시 총괄건축과 관계자는 “다음 달 중 조례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상습적으로 공개공지 기능을 훼손하는 곳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고발 조처를 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기초지자체에 보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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