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동훈에게 던져진 '킬러 문항'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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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0여일 속도감 있게 정치개혁안 제시
대중적 이목 끄는 이벤트로 분위기도 전환
유일하게 풀지 못한 문제가 ‘김건희 리스크’
용산에선 해결 난망…한동훈만의 답안 필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취임해 20여일이 지났다.

그 바쁜 연말과 신년 사이에 여당엔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취임 일성으로 자신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닷새에 1건 꼴로 정치개혁 의제를 쏟아냈는데 벌써 4번째 시리즈가 나왔다.

첫번째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와 두번째 ‘금고형 이상 확정시 세비 전액 반납’은 공천 희망자들이 아예 공천신청서에 서약서를 첨부하도록 했다. 또 자신들의 귀책으로 재보궐 선거를 해야 하면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국회의원 숫자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중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감성 섞인 이벤트도 쏟아냈다. 부산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우승을 염원하면서 ‘1992’ 티셔츠를 입었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열사들의 묘를 참배하면서 맨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거침없는 한 위원장의 행보에 지지층이 열광하는 사이에 ‘컨벤션 효과’가 끝난 이후를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벤트만으로 아직 80일 넘게 남은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는 없다.

거기다 집권여당을 불안하게 하는 먹구름이 언제 무서운 폭풍우로 변할지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초대형 이슈가 한 위원장에게 던져진 최대의 과제이다. 바로 ‘쌍특검법’으로 표현되는 김건희 리스크다.

한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을 묻는 기자들에게 “도이치모터스 특검법은…”이라고 답한다.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아무런 관련이 없고,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가 결혼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2009년 하반기에 벌어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가 급락하자 이 회사 회장이 주식시장 ‘선수’ 이 모 씨에게 시세를 조종해달라고 부탁했고, 계좌를 맡겼던 김 여사가 이에 협조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결혼한 것은 2년 후인 2012년 3월이니 특검이 수사해야 하는 권력형 범죄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 20개월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파헤쳤지만 딱부러진 결론 없이 대선을 석 달 앞둔 2021년 12월 조용히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법’을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의 근원이다. 지금 국민들은 김 여사가 어떤 사기꾼 같은 사람한테 받은 ‘명품 가방’ 이야기만 한다. 특검법에 규정된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김 여사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고, 뭔가 조치나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여론조사에서는 60% 이상이 반대의견을 냈다. “주가 조작은 모르겠고, 명품 가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게 바로 국민들의 정서다.

한 위원장이 ‘이기는 공천, 깨끗한 공천, 실력있는 공천’을 해서 253명의 지역구 후보들을 내놓은들 이런 민심의 바다에서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 위원장이 이 난제를 풀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개혁 시리즈를 쏟아내고 인기스타처럼 셀카를 찍어준다고 선거를 이길 수 있을까.

한 위원장이 영입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결국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그 자체라기보다는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했다. 또 “이 문제를 풀어야 총선을 이기는 건데, 100점 만점에 40점짜리 문제를 피하면서 어떻게 커트라인인 70점을 넘길 수 있겠느냐”고 탄식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내놓으라는 압박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알 사람은 이미 다 안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해결할 수 없었기에 여기까지 상황이 흘러온 것임을.

한 위원장이 직접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공개해야 그나마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추운 겨울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돌려 놓았던 민심은 봄을 맞아 다시 야당으로, 중도로 빠져나갈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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