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재, 대피 전 상황 파악부터”
부산소방, 18일 화재 재현 실험
열린 문으로 산소 유입, 불 키워
“연기 흡입이 인명 피해 요인”
불·연기 확산 않을 땐 구조 대기
18일 오후 2시께 남구 문현동 재개발 3구역. 소방관이 든 무전기에서 “준비 완료”란 소리가 나오자마자 공동주택 1층 내부에서 새빨간 불길이 솟구쳤다. 불이 발생한 지 4분 만에 주택 내부 온도는 1200도까지 치솟았다. 열려 있는 현관문과 창문에서 끊임없이 검은 유독성 연기가 나와 순식간에 골목을 뒤덮었다. 몇 분 뒤 “실험 종료”란 외침이 무전기로 전파되자 현장 소방관들이 서둘러 주택 내부에 물을 뿌리며 불을 끄기 시작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이날 ‘아파트 화재 대피방법 관련 화재재현 실험’을 언론에 공개했다. 철거를 앞둔 4층 공동주택을 섭외해 화재 양상과 연기 흐름 등을 보여주는 대규모 실증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은 실험은 전국적으로도 이례적이다.
소방본부는 이날 두 차례 불을 내 비교군 실험을 진행했다. 한 세대는 현관문과 창문을 닫은 채 불을 냈고 다른 세대는 현관문과 창문을 모두 연 채 불을 냈다. 실험 결과, 현관문과 창문이 모두 열린 세대에서 불이 났을 때 화재 규모가 더 컸고 연기도 다량으로 발생했다. 열린 공간으로 산소가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불을 키웠기 때문인데, 이에 따라 유독성 연기도 금방 건물 전체를 채웠다.
소방본부는 이날 실험으로 화재 시 ‘불보다 연기’가 오히려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 동안 부산 공동주택 화재는 모두 4619건이다. 불이 다른 층이나 건물로 확대된 경우는 1.27%인 59건에 불과하다. 사실상 대부분 화재가 불이 난 세대를 태우고 꺼진다는 뜻으로 공동주택에서 불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화재로 죽거나 다친 시민은 모두 433명인데, 그 중 40%가 넘는 수준인 174명이 불을 피해 대피하다가 발생했다. 지난달 서울 도봉구 21층짜리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때도 30대 남성이 계단으로 대피하다 연기를 흡입해 사망했다.
지난해 11월 소방청은 공동주택 화재 시 대피 방법을 ‘무조건 대피’에서 ‘상황 판단 후 행동하기’로 바꿨다. 불이 났을 때 대피하는 과정에서 연기 흡입으로 오히려 인명 피해가 더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 방호조사과 제용기 화재조사계장은 “연기가 세대 내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119에 신고하고 해당 장소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