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여공의 기억, 시로 적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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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자 3번째 시집 ‘나무 되기 연습’
낙천과 활력의 시 52편 한데 묶어

고명자 시인. 부산일보 DB 고명자 시인. 부산일보 DB

낙천과 활력의 시 52편이 실린 고명자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무 되기 연습>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처녀 시절 평화시장 여공 체험이다.

‘미싱 대가리와 너희는 용량이 같다/졸지 마라/다섯 달 치 월급 그까짓것 쫌 기다려 봐라’고 큰소리치던 ‘사장은 튀고 말았다’. ‘미싱 발판 죽어라 밟아도 꽃밭에는 닿지 못’하는 시절, ‘평화시장은 가난을 배우는 교실’이었단다.

‘오 원짜리’ 점심을 먹는 ‘월급 사천 원짜리 시다들’의 생활이었으나 ‘금방 고파지는 무엇이 있어도 눈빛만은 모두 형형했다’고 한다. 기실, 그때 시인은 ‘미싱 다이 한쪽에 시를 감춰놓고/혼자 곱씹는 행복’을 몰래 누렸는데 ‘시에는 눈총과 소음 먼지와 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인은 사당동 T전자에 들어가 ‘노동조합 가입 신청서에 립스틱 바른 막도장을 찍’고 이후 사흘간 옥상 점거 농성을 벌였는데 ‘전사였던 언니가 우리를 팔아넘기고 튀’어 ‘우리는 몽땅 해고되’기도 했단다. 말하자면 ‘꽃다운 나이를 잊으려 우리는 더 꽃답게 피어나야 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배고팠으나 눈빛은 더욱 형형했고, 꽃답지 못했으나 외려 더욱 꽃다웠던 그 시절의 기억은 ‘쌔그랍다(시다, 시큼하다)’고 할 만한 것이다. ‘쌔그랍다꼬?/가스나, 요래 이쁜 말 안즉 쓰고 노는가베/오야 오야 그래, 쫌 새끄랍제 몸서리쳐 감서 무 보래이/쌔가 깨춤을 추제? 그기 참맛인 기라’.

고명자 시집 <나무 되기 연습>. 걷는사람 제공 고명자 시집 <나무 되기 연습>. 걷는사람 제공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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