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의 ‘대표 찍어내기’ 이번에도 성공?…사뭇 다른 분위기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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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 ‘사퇴 거부’ 입장 속 당 지도부-친윤 물밑 갈등 확산
이용 의원 필두로 친윤계 “한동훈 자기정치” 거취 압박 ‘군불 때기’
이전과 달리 당내 다수 의원 침묵 속 비주류 사퇴 반대 목소리
다수는 “이대로는 총선 패배…양측 절충점 찾아 갈등 봉합해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대통령실이 여당 대표 격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22일 국민의힘 내부가 벌집을 건드린 뒤 극도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즉각적으로 사퇴를 거부하고 대통령실도 “한 위원장의 거취는 용산이 관여할 바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물밑으로는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사퇴 불가론’과 친윤(친윤석열)계 일각의 ‘사퇴 불가피론’이 확전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친윤계가 주도했던 지난 두 차례의 당 대표 교체 때와 달리 한 위원장 퇴출 시도는 당내 다수의 침묵 속에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어떤 방향이든 총선에는 상당한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내부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2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전날에 이어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그는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및 당무 개입 여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언급했다. 전날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신을 직접 만나 사퇴 요구를 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한 위원장이 임명한 장동혁 사무총장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과 대통령실의 논의 내용이 정제 과정 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이를 의원 단톡방에 올려 그것이 당 전체 의사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해나가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한 위원장 사퇴론을 확산시킨 친윤 핵심 이용 의원을 직격했다. 이 의원은 전날 당 소속 의원 단체대화방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위원장의 줄 세우기 공천 행태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를 공유한 바 있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친윤계 의원이 확산하려는 시도에 대해 당 지도부가 강하게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또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김경율 비대위원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얼마 전 제가 우리 당 대구·경북 의원님들께 분별없는 발언을 했다”며 “윤재옥 원내대표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자세를 낮췄다. 앞서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당 기조와 반대되는 의견을 자제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데 대해 자신이 “수도권과 TK 출마자의 인식 차이가 있다”고 받아친 데 대한 사과였다. 그러나 김 비대위원은 명품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바꾸진 않았다. 대통령실보다는 당 내부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반면 한 위원장 취임 이후 ‘인적 쇄신’ 바람 속에 한동안 몸을 낮췄던 친윤계는 ‘김건희 여사 사과 불가론’, ‘김경율 사천 논란’ 등을 고리로 한 위원장을 본격 겨냥하고 나섰다. 대통령 당선인 수행실장을 지낸 이용 의원에 이어 일부 친윤계 의원들은 이날 한 위원장의 ‘자기 정치 욕심’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한 친윤계 다선 의원은 사천 논란에 대해 “비대위원장 자리를 이용해서 자신이 대권 주자로 확실하게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임기 3년 남은 대통령을 상대로 힘 싸움을 해보자는 것인가”라며 한 위원장의 ‘마이 웨이’ 행보를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친윤 의원들이 향후 의원총회 등을 통해 한 위원장의 사퇴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사퇴 요구를 접지 않는다면 집권여당의 선택지는 자명하다”며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대신 임시직인 비대위원장을 옹립하겠느냐”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평 변호사 등 당밖의 친윤계 인사들도 한 위원장의 사퇴 불가피론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 ‘연판장 사태’ 때와는 달리 이들 친윤계의 ‘사퇴 군불 때기’에 현역 의원들의 일사불란한 호응이 없다는 점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의원들의 단체대화방도 전날 밤부터 ‘침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대신 비주류인 유경준 의원은 페이스북 글 한 위원장 지지 글을 올렸고, 태영호 의원은 한 위원장 사퇴를 반대하면서 오히려 명품가방 논란과 관련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총선을 코 앞에 두고 당 대표 퇴출 시도라는 대통령실발 총선 악재에 대한 내부의 부정적인 기류가 적잖이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당내 전반적 여론은 총선 패배는 여권 전체의 공멸이라는 점에서 양측이 어떻게든 접점을 찾아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남권 한 의원은 “대통령으로선 김 여사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총선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면 이 정부도 실패하는 것”이라며 “이 문제로 끝까지 대립해 지도부가 또 붕괴된다면 총선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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