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만개는 아직, 그래도 힐링의 천국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남 거제시 ‘카멜리아’ 지심도
섬 전체 식생 70% 이상 동백나무
3월 돼야 화려하게 활짝 피어날 듯
군데군데 소규모 꽃 그나마 위안

섬 양쪽 마끝~샛끝 한 바퀴 산책
곳곳 나무 터널 심신 달래기 최적
먼 바다 멋진 전망에 눈 시원해져

경남 거제시 지심도로 배를 타고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당초 기대했던 것은 배를 뒤집으려는 거친 풍랑이 아니라 활짝 핀 동백꽃이었다. 동백나무가 섬 식생의 70%를 차지할 정도여서 영어로 이름을 ‘카멜리아’로 정할 만큼 동백꽃이 유명한 곳이니, 2월 초에 만개하지는 않았더라도 예쁠 정도로는 피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선장이 틀어준 안내방송에서 ‘3월에 만개한다’는 내용이 나오자 풍랑 탓에 불편하던 속은 순식간에 구토 수준으로 바뀌었다. 실제 섬을 돌아보니 동백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 예쁘게 핀 동백꽃 두 송이가 산책하는 두 젊은 연인을 반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 예쁘게 핀 동백꽃 두 송이가 산책하는 두 젊은 연인을 반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그런데 지심도의 매력은 동백꽃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뜬 무인도 같은 섬의 매력은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는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만들어주는 ‘나무 터널’에 있었다. 풍랑에 뒤집힌 속을 가라앉히는 것을 넘어 직장생활에서 지친 심신을 힐링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낙원이었다.


■마끝전망대

거제시 장승포동 지심도터미널에서 10시 50분에 출발한 배는 불과 15분 만에 지심도에 도착했다. 시간은 짧았지만 이날 파도가 거칠어 배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전후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낚시꾼을 포함해 10여 명에 이른 승객의 입에서 연거푸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하루 다섯 차례 운항하는 지심도행 배는 대개 만원인데 이날은 파도가 심하다는 예보가 나와 승객이 적었다고 한다. 미리 여행 일정을 정해뒀던 터라 포기할 수는 없어 거친 풍랑이 친다는 걸 알면서도 배에 올랐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 선착장 앞에 설치된 인어상.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 선착장 앞에 설치된 인어상. 남태우 기자

지심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인어 동상이 이용 승객을 기다린다. 호랑이가 지심도 바다 밑에 살던 인어를 사랑하다 목숨까지 잃었다는 전설에 착안해 만든 동상이다. 인어 동상 앞에서는 전동차량이 대기 중이다. 배를 타고 온 승객을 섬 위쪽까지 실어주는 차량이다. 지심도에서 민박집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현지 주민이 유료로 운영한다. 파도에 시달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걷기로 했다. 결과론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 마끝전망대로 가는 작은 길에 동백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다.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 마끝전망대로 가는 작은 길에 동백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다. 남태우 기자

선착장에서 지그재그로 섬 위쪽을 향해 걸어가면 ‘동백하우스’라는 민박집이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샛끝전망대, 왼쪽으로 가면 마끝전망대가 나온다. 어느 쪽을 택하든 섬을 한 바퀴 돌면 두 곳 모두 갈 수 있기 때문에 방향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다니려면 마끝전망대부터 가는 게 좋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 마끝전망대에서 젊은 커플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 마끝전망대에서 젊은 커플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마끝전망대를 향하는 길에 여러 차례 나무 터널이 나타났다. 구름이 많이 끼어 날씨가 흐린 탓에 터널 안은 매우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동백꽃도 많이 피지 않았고, 그나마 핀 꽃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끝전망대는 지심도 남쪽 끝이다. 바다 건너편에 거제시 지세포리가 바라보인다. 풍경이 시원하고 사진이 잘 나와 찾는 사람이 많다.


■샛끝전망대

마끝전망대에서 섬의 동쪽인 국방과학연구소 방면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그나마 곳곳에 동백꽃이 피었다. 대량으로 만개한 것은 아니지만 방향과 각도 조절을 잘하면 꽤 괜찮은 사진 하나는 건질 수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인근에는 활주로라는 곳이 있는데 정말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긴 평지가 펼쳐져 있다. 해맞이전망대도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2016년 최병양 작가가 만든 ‘러브러브’라는 손가락 하트 모양 조각이다. 지심도에 간 여행객이라면 하트 사이에 들어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일종의 ‘인증샷’이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의 명물인 조각 ‘러브러브’.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의 명물인 조각 ‘러브러브’. 남태우 기자

오전 10시 50분 배를 타면 점심을 먹기 애매하기 때문에 미리 싸온 샌드위치 도시락과 내려온 원두 드립커피를 꺼낸다. 활주로는 지심도에서 가장 높은 곳인 데다 가장 넓은 평지가 있는 곳이어서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장소다. 해맞이전망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와 드립커피를 맛있게 먹고 마시며 동쪽으로 먼바다를 바라본다. 날씨가 맑으면 대마도까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 활주로로 가는 산길이 마치 정글 속인 것처럼 차분하고 고요하다.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 활주로로 가는 산길이 마치 정글 속인 것처럼 차분하고 고요하다. 남태우 기자

해맞이전망대에서 해안선전망대를 거쳐 샛끝전망대까지 지심도 동쪽 지역은 깎아지른 듯한 해식절벽이다. 거친 파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섬을 깎아내린 결과물이다. 도중에 넝쿨나무처럼 가지가 늘어진 동백나무 군락이 터널을 이룬 곳이 나타난다. 동백꽃이 만개하면 꽃 터널을 이룬다는 동백꽃 터널이다. 아쉽게도 꽃이 드문드문 핀 탓에 소문난 꽃 터널을 즐길 수는 없었다. 속으로 ‘다음 기회’를 외치며 터널 아래를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 동백꽃 터널에 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남태우 기자 경남 거제시 지심도 동백꽃 터널에 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남태우 기자

샛끝전망대를 지나 다시 섬의 서쪽으로 접어든다. 이제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오후 2시 50분 배를 타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기 때문에 여유는 많다. 그래서 느긋하게 걸으면서 보이는 족족 사진을 찍는다.

지심도 서치라이트 보관소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지심도에서 주민을 내쫓고 군사시설로 활용할 때 만든 곳이다. 지심도에는 이곳 말고도 탄약고, 포진지 등 일제의 흔적이 더러 남아 있다.

옛 전등소 소장 관사 일대에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남태우 기자 옛 전등소 소장 관사 일대에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남태우 기자

서치라이트 보관소를 지나자 지심도에서 동백꽃이 가장 잘 핀 장소가 나타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보이는 집 일대다. 일제강점기에 지심도에 전력을 공급했던 전등소의 소장 사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낡아 무너질 것 같은 사택과 동백꽃이 묘한 조화를 이뤄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 핀 동백꽃은 지심도에 꽃이 만개할 경우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