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선단선 엉터리 ‘위치 보고’에 구조 골든타임 놓쳤다
동료 어선 사고 발생 2시간 지나 ‘정박 중’ 보고
6시간 뒤 “연락 안된다” 신고…구조 대응 지연
속보=4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된 제2해신호 전복 사고(부산일보 3월 11일 자 1면 보도 등) 당시 관할기관에 접수된 ‘위치보고’가 엉터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2시간 전 뒤집혀 응답이 없던 제2해신호를 대신해 함께 조업 한던 동료 선단선이 현재 위치를 전달하면서 어구 표시용 부표를 제2해신호로 착각해 정상 조업 중이라고 통보했다. 이 때문에 당국이 사고 사실을 인지하는 데만 9시간 넘게 걸렸고 대응이 늦어지면서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제2해신호 전복 추정 시간은 지난 8일 오후 8시 55분께다. 항적기록장치(e네비게이션) 분석 결과, 이 시점 이후 기록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시 48분 후인 오후 10시 43분, 제주어선안전조업국에 제2해신호 위치보고가 들어왔다.
어선안전조업법 시행령에 따라 풍랑특보가 발효된 해역에서 조업 중인 어선은 12시간 간격으로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제주어선안전조업국은 제2해신호에 보고를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위성전화를 이용해 통신이 온 건 선단선인 105명진호였다. 명진호는 레이더에서 사고 선박의 어구를 표시한 전자 부이만 보고 제2해신호가 ‘정박 중’이라고 통보했다. 그리곤 뒷날 오전 6시가 넘어 “제2해신호와 연락이 안 된다”며 조업국에 신고했다. 사고 추정 시각으로부터 무려 9시간이나 더 지난 시점이다. 조업국은 그제야 통영해양경찰서에 연락두절 선박이 있다고 전달했고, 해경은 뒤늦게 긴급 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구조 적기를 놓친 뒤였다.
위급 상황에 대비해 제도화한 각종 장비도 무용지물이었다. 정부는 2011년부터 모든 어선에 ‘선박위치발신기’ 부착을 의무화했다. GPS 기반 선박입출항자동신고장치(V-PASS)와 자동선박식별장치(AIS)가 대표적이다.
V-PASS는 어민들 입출항 편의와 해난사고 신속 대응을 위해 도입됐다. 입출항 자동 신고는 물론, 외부에 설치된 송·수신 안테나가 거치대에서 분리되거나 어선 기울기를 감지해 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땐 어선 위치와 구조 신호를 자동으로 발신한다. 무동력선이나 어장관리선을 제외한 모든 어선이 장착 대상이다. AIS는 선박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장비다. 주위 선박의 선명, 침로, 속력 식별이 가능하다. 10t 이상 어선이 의무 대상이다.
제2해신호 역시 두 장비 모두 갖췄지만 정작 사고 상황에선 먹통이 됐다. 특히 V-PASS는 신호 통달거리가 30km 남짓이라 제2해신호처럼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중형어선엔 실효성이 떨어진다. 실제 이번 사고 때도 해경 상황실엔 조난 신호가 수신되지 않았다.
규제와 관리도 허술하다.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어선 검사 때 불합격 판정을 받아 운항할 수 없다. 또 장비를 정당한 사유 없이 작동하지 않거나 고장 또는 분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벌금이 300만 원 이하에 불과한 데다 관리·감독 또한 주먹구구라 악용하는 사례가 적잖다. 연안 조업이 금지된 근해 어선의 경우, 조업 구역 위반 사실을 숨기려 위치발신기를 고의로 꺼버린다.
더욱이 출항 때 정상 작동돼야 한다는 규정도 없어 한번 고장 나면 방치하기 일쑤다. 고장 접수도 정상 작동 여부를 판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멀쩡한 장비라도 고장 처리할 수 있다. 2018년 2월 전남 완도군 청산도 해상에서 전복돼 1명이 죽고 5명이 실종된 사고 선박 장비는 꼬박 2년째 고장 상태였다.
해경은 13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6개 기관과 통영항으로 인양한 선체 합동 감식을 진행한다. 이후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본격적인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제2해신호에 장착된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다.
한편,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났지만 실종자 수색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해양 선박사고 위기 대응 매뉴얼은 20도 이하 수온에선 3일간 집중 수색을 벌인 뒤, 성과가 없을 시 4일 차부터 일반 경비 활동과 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경은 당분간 집중 수색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실종자들이 하루속히 가족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수색 작업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