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한반도가 재일조선인의 조국이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부산대 교수 3인 뭉쳐 출간

김석범 서경식 최덕효 정영환
4명의 재일조선인 대담 묶어

고 서경식 교수는 “문제는 식민주의다”라고 했다. 사진은 2014년 인터뷰 당시 모습으로 아래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고 서경식, 서민정, 이재봉, 김용규 교수. 소명출판 제공 고 서경식 교수는 “문제는 식민주의다”라고 했다. 사진은 2014년 인터뷰 당시 모습으로 아래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고 서경식, 서민정, 이재봉, 김용규 교수. 소명출판 제공

부산이라는 위치는 지리적 역사적 접경이다. 경계에서 꽃이 핀다면 부산이 그렇다. 디아스포라 지식인 고 서경식 교수가 “20년 가까이 한국을 오가며 느낀 것은, 부산대를 제외하고 많은 경우 너무 정형화된 시선으로 재일조선인 문제를 본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말속에 그 점이 들어 있다. 부산대 김용규 서민정 이재봉 교수 3명이 ‘정형화된 시선’을 넘어서는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대담집>(소명출판)을 냈다. 2014~2023년 재일조선인 4명-김석범(1세대) 서경식(2세대) 최덕효·정영환(3세대)을 6차례 대담한 내용을 한데 묶은 것이다. 비판과 저항의 형식을 창조한 그들 재일 디아스포라의 모습이 뜨겁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은 “한국 해방공간 5년의 역사를 철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소명출판 제공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은 “한국 해방공간 5년의 역사를 철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소명출판 제공

대작 소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1925~)은 직접적 집단적 경험의 제1세대다. 그는 자신을 ‘월경적인 존재’라며 “분열된 조선을 원하지도 않고, 일본에 동화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북조선과 한국을 다 지지하지 않는 조선적(朝鮮籍)이다. 조선적은 그들이 아직도 식민지적 노예 상태에 있다는 것의 비극적 반증이다. 그는 애써 “남북이 다 조국이지…”라고 말한다.

그는 “한반도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분단의 기원이자 그가 체험한 한국 해방공간 5년의 역사를 철저한 반성과 각성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뉴라이트 등속이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려는 흐름을 경계하면서 남한의 철저한 민주화를 역설한다.

그는 “‘일본어로 조선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명제를 푯대 삼아 글을 써왔다”며 “일본문학과는 다른 일본어문학을 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이 쓰지 못하는 4·3 역사를 쓰면서 나라 잃은 사람의 정체성 찾기를 해왔는데 그는 그것을 “일본어로 일본문학을 월경하려 했다”고 표현한다.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대담집>. 소명출판 제공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대담집>. 소명출판 제공

대표적 디아스포라 학자이자 도쿄 게이자이대학 명예교수였던 고 서경식(1951~2023)은 제2세대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의 ‘조국’은 남북 모두 포함한 조선 반도이고, 나의 ‘모국’은 어머니 나라인 대한민국이며, ‘고국’은 내가 태어난 일본”이라고 각각 다르게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곳,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투쟁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조국”이라고 정의하면서 “통일된 나라만이 우리의 조국”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는 한국어 사용을 완벽하게 할 수 없고, 내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일본어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며 “식민주의는 어떤 식으로든 동아시아에서 청산되지 않았기에 나는 마지막까지 해방될 수 없는 식민지 시민”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조선반도의 분단,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식민지 시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영국 셰필드대 교수인 역사학자 최덕효는 “재일조선인 역사에는 조선반도의 세계사적 비극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소명출판 제공 영국 셰필드대 교수인 역사학자 최덕효는 “재일조선인 역사에는 조선반도의 세계사적 비극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소명출판 제공

제3세대인 최덕효와 정영환은 고 서경식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재일조선인 역사를 공부한 이들이다.

영국 셰필드대 교수 최덕효(49)는 ‘포스트 제국의 시련-1945년에서 1952년까지 미국과 일본의 관계 속에서 탈식민화, 인종, 냉전의 정치학’이란 논문으로 국제아시아학회의 최우수 인문학박사논문상을 수상한 역사학자다. 그는 “재일조선인 문제는 식민주의에 뿌리를 둔 문제”라며 “우리 재일조선인의 역사야말로 일제 식민주의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 반도의 세계사적 비극인 식민주의, 냉전, 분단체제를 재일조선인 이야기에서 역으로 비춰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일본은 포스트식민, 제국 이후의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를테면 전후 미군 병사들이 일본 여성들을 유혹하는 것을 보고는 그 불만을 재일조선인이나 재일대만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백인한테 패했지 너희들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며 표출하는 일본인의 폭력이 전후 일본 현대사 인식의 원점일 수 있다”고 본다.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정영환은 역작인 <해방공간의 재일조선인사>을 낸 역사학자다. 소명출판 제공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정영환은 역작인 <해방공간의 재일조선인사>을 낸 역사학자다. 소명출판 제공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정영환(44)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을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일본 미국 남북한이 얽혀 있는 재일조선인 역사를 다룬 역작 <해방공간의 재일조선인사>를 낸 역사학자다.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는 방식은 다양하다”고 말한다. “공화국 공민이라서, 무국적이라서, 통일을 원해서, 일본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서 등이 있으며, 그중 ‘북이 아닌 것은 아니다’도 하나의 방식인데 한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통일을 원하면서 자신을 공화국 공민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적을 말하는 이들은 자신을 상황에 맡겨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 자신에 대한 존엄을 갖고 있다”며 “조선적은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고정하기 위해 내린 닻”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 서경식의 시각을 날카롭게 발전시켜 일본 내의 재일조선인 지역사를 파고들고 있고, 식민주의라는 틀을 가지고 세계사적 공통성을 찾는 재일조선인 연구를 하고 있다. “남북 그리고 해외동포들,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재일조선인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김용규 부산대 교수는 “이 대담의 의도는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지식인들의 고민과 사유가 역사적으로, 세대적으로 어떻게 변주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며 “1세대는 디아스포라의 집단적 생성, 2~3세대는 개인적 생성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이효석 김성환 부산대 교수도 일부 대담에 참여했다. 감동과 자극, 존경과 아픔, 시야의 확대가 함께하는 대담집이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