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차르 푸틴'의 시대
성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상징이다. 크고 작은 9개의 탑 등 화려한 비잔틴 양식의 바실리 대성당은 슬라브족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성당의 오른쪽은 크렘린(Kremlin), 왼쪽은 굼(GUM) 백화점으로 모스크바 관광의 처음과 끝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이 성당은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이반 4세(1530~1584)가 몽골과 카잔 등을 정벌한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축조했다. 러시아에서 ‘차르’(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 첫 번째 통치자인 이반 4세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볼가강 유역과 시베리아까지 영토를 넓히는 등 러시아의 꿈을 복원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6만여 명의 목숨을 앗은 노브고로드 대학살과 아들을 몽둥이로 살해할 만큼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반 4세의 동상을 모스크바 등 여러 도시에 세우면서 역사의 전면으로 재소환한 주인공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압도적 득표율로 2030년까지 집권 5기의 문을 열었다. 개헌을 통해 2030년 대선에도 출마하면 장장 36년간 러시아의 차르로 군림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이반 4세를 연상시키듯,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적과 배신자에 대한 암살과 테러를 지속하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해 사업가, 관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사라졌다. ‘푸틴의 정적’ 나발니는 시베리아 최북단 교도소에서 47세 나이로 의문사했다. 러시아 국영 석유 대기업 로스네프트 CEO의 아들 이반 세친 등 2022년부터 현재까지 의문사한 러시아 사업가는 무려 51명에 이른다고 한다. 반란의 선두에 섰던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를 뒷배로 삼은 북한은 대선 개표 직후인 18일 서울을 전술핵 타깃으로 정조준한 초대형방사포 공중폭발시험까지 감행했다. 지난해 9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푸틴 대통령은 5월 취임식 직후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다고 한다. 반서방을 기치로 내세운 북·중·러 삼각동맹이 결속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상상하기도 싫은 국제질서의 변화가 전 세계를 불확실의 영역으로 내몰고 있다. 이반 4세가 죽은 지 440년. 바실리 대성당에 머물던 그의 유령이 다시 세계를 뒤덮는 모양새다. 한반도의 앞날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