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비싸’… 생활 곳곳 녹아든 ‘핑크택스’ 비판 고조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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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시설·방 크기 등 비슷한데도
여성 전용 원룸 보증금·월세 비싸
안전 불안감 이용한 마케팅 지적

화장품·미용·의류 등 불공정 많아
“성별 아닌 원가로 가격 책정돼야”

여성용 상품이나 서비스에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이른바 ‘핑크 택스’를 둘러싸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부산 여성단체의 성평등 촉구 기자회견 모습. 부산일보DB 여성용 상품이나 서비스에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이른바 ‘핑크 택스’를 둘러싸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부산 여성단체의 성평등 촉구 기자회견 모습. 부산일보DB

“위치도 술집 골목 쪽이고, 여성 전용이라고 더 안전한 것은 사실 아닙니다.” 부산 금정구에서 공인중개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여성 전용 원룸과 일반 원룸에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여성 전용 원룸은 비슷한 조건인 일반 원룸보다 보증금과 월세를 높게 쳐서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높은 보증금과 월세가 안전을 담보하진 못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여성 대상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자 여성들이 안전을 이유로 여성 전용 원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건물 입주민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외엔 별도 보안 장치가 갖춰진 경우는 드물다. 불안감을 이용한 상술이나 이른바 ‘핑크택스’(Pink Tax)라는 지적도 나온다. 핑크택스는 2015년 미국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같은 제품과 서비스임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성용 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분홍색을 뜻하는 핑크(Pink)와 세금을 뜻하는 택스(Tax)의 합성어다.

25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인근 여성 전용 원룸과 일반 원룸을 비교한 결과 여성 전용 원룸의 월세는 비슷한 조건인 일반 원룸보다 약 20만 원 비쌌다. 전용면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안 시설과 방 크기, 주요 사설 접근성 등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여성 전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웃돈이 붙었다.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 월세도 일반 게스트하우스보다 약 10만 원 높았다.

여성 전용 주거지가 등장한 건 여성이 범죄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서구 부민동 동아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일하는 B 씨는 “여대생을 중심으로 안전 우려가 커 비싼 가격에도 여성 전용 원룸을 선택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같은 상품이어도 ‘여성용’이라는 타이틀이 붙이면 가격이 조금 더 비싸지는 핑크택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원룸과 보안 시설에서 큰 차이가 없는 여성전용 원룸은 안전에 대한 불안을 이용한 마케팅”이라며 “여성 전용이라는 이름하에 핑크택스가 붙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처음 생겨난 핑크택스가 국내에 처음 화두로 오른 시기는 2018년 6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핑크택스(Pink Tax)를 아십니까’ 국민청원이 등장했을 때로 본다.

최근 중국에서 한 여성이 화장품 업체를 상대로 남성용과 같은 여성용 화장품이 더 비싸다며 소송을 내면서 국내에서도 다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여성들은 월세부터 화장품 등 생필품, 미용 서비스 등 전반에 핑크택스가 붙어있어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대학생 이지율(25) 씨는 “학내 온라인 게시판에는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갔는데 기장과 스타일이 남자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는데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에 비해 더 많은 커트 비용을 내야 했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고 말했다.

‘가성비’를 생각해 남성 의류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김정연(25) 씨는 “고급 의류가 아니라 일반적인 반팔 티셔츠를 사려고 해도 여성용은 남성용에 비해 재질이 약한데 가격은 비싼 경우가 많아 남성용 작은 사이즈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김지원(27) 씨는 “명품 가방 등 고급을 추구하는 일부 소비문화가 스킨로션, 속옷 등 생필품으로도 확대돼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변정희 상임대표는 “여성은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별이 아닌 원가를 기준으로 합리적인 가격이 책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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