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 복무 없는 계약형 필수의사제, 수도권 쏠림 못 막아 [지역의료 해법 '지역의사제']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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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지역이 키운 의사, 지역에

수도권 경험자 위주로 교수 임용
단순 증원 따른 낙수효과는 미미
지역인재전형도 지역 정착 한계
의료계 설득·적극 유인책 제시로
최소 지역 근무기간 등 설정해야

정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국에서 의대생의 집단 휴학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동맹 휴학을 1건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부산의 한 의대 강의실이 비어 있는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정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국에서 의대생의 집단 휴학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동맹 휴학을 1건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부산의 한 의대 강의실이 비어 있는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지역 의료계는 늘어난 지역 의대 정원 증원분이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단초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지역 정착률을 높이는 ‘한국형 지역의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의무 복무 사항이 없는 단순 ‘계약형 필수의사제’로는 의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장치가 없어서다.

■‘한국형 지역의사제’ 논의하자

26일 부산 의료계에 따르면 단순히 지역 의대 정원 증원과 지역인재전형 확대를 통한 ‘낙수효과’로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 구상은 근시안적인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의술을 배운 뒤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의사들을 붙잡아 둘 현실적 대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지역 의대 출신 의사가 자신이 졸업한 의대 교수로 지원하려 해도 수도권 근무 경험이 없다면 교수 임용이 어렵다. 지역 의료계가 근본적인 의료 구조 개혁과 강력한 지역의료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부산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우리 학교 의대 출신으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까지 전공의를 거쳐도 적어도 전임의(전문의를 딴 임상강사) 때는 수도권 ‘빅 5’(서울대·삼성서울·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성모) 병원에 가 경험을 쌓아야 우리 병원 교수 임용에 유리한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경우 전국 90개 의대 중 71개 대학에서 의무 복무 기간이 포함된 지역정원제(지역의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가 탄탄하게 받쳐주는 일본과 한국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역 의료계는 한국보다 먼저 지역 소멸과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 해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수도권에 쏠려 있는 병상 수를 조절하고, 지역의료에 대한 대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부산대병원 정성운 원장은 “지역 의대 정원을 확대하지만 향후 수도권에 수천여 병상이 생긴다면 결국 의사 면허 취득 후에는 다들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 정착을 위한 정책, 지역 병원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역인재전형을 늘리고 지역의사제를 도입한다고 한들 근본적인 ‘서울 쏠림’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 설득·합의 모델 도출해야

시행 10년째인 의대 지역인재전형은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 소재지에 거주하는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는 제도다. 지역 출신 의대생들이 출신지에서 의사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는 최소한의 장치로 꼽힌다. 지역인재전형으로 입학한 의대생의 경우 지역 내 수련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과정을 거쳐 권역 내 거점병원 교수나 개원의로 활동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지역인재전형 실효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부산 지역 4개 의대는 매년 지역인재전형 모집 비율을 대폭 높여왔다. 일부 대학은 정부가 발표한 지역인재전형 모집 60%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다. 부산에서도 부산대 의대가 2024학년도 기준 80.8%, 동아대 의대가 88.2%, 인제대 의대가 43.9%, 고신대 의대가 49.4%를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했다.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된 의대생의 지역 정착률은 개인 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정확한 집계가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사실상 지역 출신으로 특혜를 받고 입학한 의대생 일부가 졸업 후에 지역에 정착하기보다 서울 등으로 이탈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2014~2023년 비수도권 의대 졸업생 1만 9408명 중 47%(9067명)는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 전문의가 됐다.

지역 의무 복무를 조건으로 하는 ‘한국형 지역의사제’ 도입을 위해서는 의대 정원 증원과 더불어 지역의사제에 대해 반대 의견이 강한 의사 집단에 대한 설득과 과감한 유인책이 필수다.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 신용범 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은 “환자들의 병원 선택권이 제한되지 않는 한, 지역 의사가 늘어나도 환자들은 결국 빅 5 등 대형병원을 찾을 거라고 본다”며 “지역의사제를 도입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 보고 근본적인 의료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연대 김경일 사무국장은 “지역의사제 핵심은 국가가 최소 8~10년 지역에서 의사가 의무 복무하도록 유도해 지역 의료서비스의 접근성과 질을 확보하는 것이며, 이와 함께 공공 의대에 대한 논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의료와 의료서비스가 공공재라는 전제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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