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서 첫 출발한 KTX… 20년 간 10억 명 태웠다
2004년 4월 1일 첫 운행 시작
KTX 등 3억 승객 부산역 이용
점유율 높인 KTX, 속도도 단축
주말 좌석 부족 등 해결 과제도
역사는 부산역에서 시작됐다. 2004년 4월 1일 오전 5시 5분. 수많은 염원과 함께 기차가 움직였다. 고객을 태운 KTX가 운행한 첫 순간이었다. 부산에서 첫발을 뗀 KTX가 어느덧 국토를 누빈 지 20년이 흘렀다.
고속철도 KTX가 맞은 승객은 지난해 10억 명을 돌파했다. 특히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내린 고객은 서울역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관광과 업무 등으로 부산을 오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KTX는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리며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부산에서 실현된 꿈
부산발 첫 KTX 운전실에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송하복(59) 기장이 앉아 있었다. 40년째 근무 중인 베테랑 기관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출발 신호를 기다릴 때 승강장에서 많은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서울에 도착해 기념행사를 열었다”고 회상했다.
부산에서 근무했던 송 기장은 2002년부터 KTX 운전을 준비했다. 그는 “처음엔 서울에서만 KTX 기관사를 선발하려 했다”며 “부산에서도 KTX가 출발하는 만큼 경력자가 필요하다고 건의해 교육을 받게 됐다”고 털어놨다. 송 기장은 “당시 2년간 부산에서 오송까지 출퇴근했다”며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KTX 46대를 일일이 다 시운전하고 점검했다”고 밝혔다.
첫 KTX는 여러 직원들 노력이 더해져 서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당시 정비 책임자였던 이석록 전 선임장(57·2022년 퇴직)은 “첫 열차를 차량기지에서 정시에 출고하려고 밤을 꼬박 새웠다”며 “차량기지 모든 직원이 부산역으로 가는 KTX를 박수로 환송할 때 코가 찡했다”고 떠올렸다. 첫 KTX에 탄 유나영(45) 승무원은 “고객을 만나는 날을 상상하며 한 달간 교육을 받았다”며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서 밤잠을 설치고 출근했다”고 밝혔다.
개통 첫날 부산역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대한 행사가 열렸고, KTX를 타보려는 고객이 몰렸다. 당시 역무원이었던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김기영(52) 경영계획팀장은 “승객이 많았는데 KTX 개집표기에도 오류가 생겨 혼란스러웠다”며 “열 받은 고객에게 한 대 맞은 기억도 난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승객은 증가, 시간은 단축
부산을 시작으로 KTX는 쉼 없이 달렸다. 유례없는 고속철도 도입에 개선할 부분도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왔다. 전국 KTX 승객은 2007년 1억, 2012년 3억, 2015년 5억에 이어 지난해 10억 명을 넘어섰다.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조영문(58) 경영인사처장은 “KTX가 국내 최초로 시속 300km가 넘는 지상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게 자랑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KTX가 개통한 20년 동안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린 승객은 3억 명이 넘었다. 코레일 부산경남본부에 따르면 2004년 4월 1일부터 올해 3월 28일까지 부산역 누적 승객은 3억 1057만 4435명이었다. 2004년 연간 약 1200만 명에서 2023년 2200만 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새마을호 등 일반 열차를 포함하고 SRT는 제외한 수치지만, KTX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 이견은 없다.
속도에서 우위를 점한 KTX는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왔다. 코레일에 따르면 2004년 KTX 승객은 1988만 2000명으로 18%, 일반열차 승객은 9133만 2000명으로 82%였다. 지난해에는 KTX 8401만 4000명과 일반열차 5268만 명으로 비율이 61%와 39%로 역전됐다.
KTX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성장통도 많았다. 조 처장은 “20년 전 개통 당시 일주일 동안 직원들이 만세를 부를 만큼 승객이 많았다”며 “실수요가 드러나기 시작하니 막상 그렇진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호차와 알파벳으로 표시한 좌석 등 여러 문제로 초반에 고객 혼란이 많았다”며 “선로를 확장하고 문제를 개선하면서 승객이 늘었고, 사고 등 비상시에도 다른 선로를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상태”라고 밝혔다.
KTX는 2004년 46대에서 지난해 103대까지 운행 열차를 늘렸다. 부산~서울 최단 운행 시간은 2시간 47분에서 2시간 23분까지 24분 단축됐다. 2015년 5만 9800원이던 요금은 10년째 동결됐다.
■새 도약 준비하는 KTX
KTX는 기술 발전으로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자동 살수 장치 등이 선로를 식히기도 한다. 이 전 선임장은 “개통 초기에는 정비 담당 직원이 승차해 비상 상황에 대비했는데 지금은 직원이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상반기부터 시속 320km로 달릴 신형 KTX ‘EMU-320’을 순차적으로 도입하며 열차 교체에도 나선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승객까지 KTX를 편리하게 이용하는 모양새다. 코레일에 따르면 승차권 온라인 예매 비율은 2004년 7%에서 2023년 89.8%까지 증가했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 51%가 고속철도를 이용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 처장은 “부산역에 매표 창구 20개를 마련해도 모자랐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온라인 예매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송수민 경영인사처 대리는 “명절 때면 역귀성하는 노인 분들이 부산역을 홀로 찾기도 한다”며 “너무 일찍 오시거나 승강장에 모셔드릴 때도 있는데 많은 분이 편하게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KTX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비행기와 버스 등 교통수단과 여행 상품 등을 연계하는 ‘코레일형 서비스형 미디어(MaaS)’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김 팀장은 “KTX는 반응이 좋았던 영화 전용 객실을 운영하는 등 고객을 위해 변화를 시도했다”며 “고객이 편하게 여행하거나 이동하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KTX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당장 주말이면 부산과 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 KTX 좌석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열차 확대와 구간별 인원 조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장기적으로는 영남과 호남을 잇는 고속철도 등 국토 곳곳으로 KTX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