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년 전 통영시 오판, 부활 기지개 안정국가산단에 ‘찬물’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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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벽 통하는 유일한 간선도로
옛 성동조선 주차장과 맞교환
해상 물류길 막혀 후발 기업들
생산 시설 추가 투자 망설여

2015년 10월 통영시가 성동조선해양이 주차장을 기부 체납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넘긴 ‘광도면 황리 1629’ 도로. 성동조선 1야드와 옛 침매터널 제작장 사이를 관통하는 길이 900m, 폭 16m 왕복 2차선 도로로 내륙쪽 입주 기업이 안정만 안벽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지만 지금은 공장용지로 지목이 변경돼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김민진 기자 2015년 10월 통영시가 성동조선해양이 주차장을 기부 체납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넘긴 ‘광도면 황리 1629’ 도로. 성동조선 1야드와 옛 침매터널 제작장 사이를 관통하는 길이 900m, 폭 16m 왕복 2차선 도로로 내륙쪽 입주 기업이 안정만 안벽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지만 지금은 공장용지로 지목이 변경돼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경남 통영시가 안정국가산업단지 안벽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특정기업 공장용지로 편입시켜주면서 후발 기업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각종 기자재 수송과 완성품 출하 시 필요한 바닷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안일한 정책 결정이 겨우 반등 기회를 잡은 산업단지 활성화를 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통영시에 따르면 시는 2015년 10월 안정산단 내 시유지였던 ‘광도면 황리 1629’ 1만 4268.7㎡를 옛 성동조선해양(현 HSG성동조선)에 무상으로 넘겼다. 해당 토지는 성동조선 1야드와 옛 침매터널 제작장 사이를 관통하는 길이 900m, 폭 16m 왕복 2차선 도로다.

당시 조선업 활황으로 사업장을 넓히던 성동조선이 중간에 낀 도로로 인해 야드 활용에 제약을 받자 통영시에 ‘대토’를 제안했다. 산단 외곽에 있는 성동조선 소유부지 1만 7216.5 ㎡(황리 1645-2)에 주차장을 만들어 기부 체납할 테니 도로를 달라는 것이었다. 몰려드는 조선 노동자들로 인해 주차난에 허덕이던 통영시는 선뜻 수락했다. 이를 토대로 주차장과 도로를 맞바꾸고, 공장용지로 지목변경까지 완료하면서 거래는 마무리 됐다.

그런데 짧은 호황이 끝나고 긴 불황이 찾아오면서 일이 꼬였다. 2000년 초반 수주잔량 기준 세계 8위까지 올랐던 성동조선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직격탄을 맞고 2010년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4조 원 상당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자력 회생에 실패하자 2019년 법원에 기업 회생을 신청, 4차 매각 시도 끝에 HSG중공업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현대산업개발이 건설 중인 LNG 발전소와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 사이 도로(왼쪽). 해안과 이어져 있지만 대형 화물선이 접안할 안벽이 없는 데다, 높이 8.5m LNG 터미널이 도로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어 화물차는 통행도 여의찮다. 오른쪽은 안전국가산단 내 국가항 물량장 진입로다. 주변 기업들 차량과 적치물로 인해 접근조차 어렵다. 김민진 기자 현대산업개발이 건설 중인 LNG 발전소와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 사이 도로(왼쪽). 해안과 이어져 있지만 대형 화물선이 접안할 안벽이 없는 데다, 높이 8.5m LNG 터미널이 도로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어 화물차는 통행도 여의찮다. 오른쪽은 안전국가산단 내 국가항 물량장 진입로다. 주변 기업들 차량과 적치물로 인해 접근조차 어렵다. 김민진 기자

이 과정에 4야드로 계획했던 침매터널 제작장(27만 5269㎡)은 현대산업개발에 팔렸다. 이곳엔 LNG 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HSG중공업이 인수 과정에 제외했던 3야드(17만 1949㎡)는 최근 (주)엔솔이 매입했다. 엔솔은 경북 포항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다. 국내 최고 판형 열교환기 전문제조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조선해양·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거점으로 안정공단을 낙점했다. 덕분에 개점휴업 상태였던 안정산단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제는 성동조선 사유지가 돼버린 도로다. 이 도로는 내륙 쪽에 자리 잡은 산단 입주 기업이 안정만과 맞닿은 안벽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 사이에 해안과 이어진 도로가 하나 더 있지만, 대형 화물선이 접안할 안벽이 없는 데다, 높이 8.5m LNG 터미널이 도로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어 화물차는 통행도 여의찮다. 산단 내 국가항 물량장은 기능을 상실하지 오래다. 주변 기업들 차량과 적치물로 인해 접근조차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성동조선은 외부 업체 진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핵심 생산시설 일부로 안전 관리나 유지 보수, 보안 문제도 상당하다는 이유다. 엔솔 측은 물류길이 막히자 공장 설립을 망설이고 있다. 시설을 정상 가동하려면 바닷길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맹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누가 투자하겠냐”고 반문했다.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 부산일보DB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 부산일보DB

이 때문에 어렵게 잡은 산단 부활 기회마저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 상공계 관계자는 “결국 공공재인 도로를 특정기업 소유로 만들어준 통영시의 오판이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통영시가 환수에 나섰지만 성동조선은 꿈쩍도 않고 있다. 통영시 관계자는 “당시로선 최선의 결정이었다”면서도 “사유지라 당장은 강제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입주 기업 생산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가능한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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