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도 개연성도 때려잡는 ‘비키퍼’…스테이섬표 액션은 인정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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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 봤다는 사람이면 브래드 피트 주연의 ‘퓨리’(2014)를 모를 수 없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전차부대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특히 현실감 넘치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죠.

바로 그 ‘퓨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배우 제이슨 스테이섬과 만났습니다. 지난 3일 개봉한 ‘비키퍼’는 스테이섬이 악당들을 박살 내고 다니는 속 시원한 액션물을 표방합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아쉬움을 넘어 실망스러운 대목이 많았습니다.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제목인 ‘비키퍼’(beekeeper)는 양봉업자, 벌꾼이라는 뜻입니다. 주인공인 애덤 클레이(제이슨 스테이섬)도 미국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벌꾼으로 일하는 중년 남성입니다.

애덤은 친절한 할머니 엘로이즈의 헛간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엘로이즈는 오갈 데 없던 애덤을 유일하게 받아준 은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엘로이즈가 보이스피싱 사기로 자선재단 기금을 모조리 잃게 되면서 사태는 급변합니다. 엘로이즈는 충격으로 목숨을 끊고, 애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진짜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사실 비키퍼는 웬만한 정보기관 고위 관리도 잘 모르는 특수 프로그램 이름입니다. 비키퍼 요원들은 법으로는 처리 못하는 일을 해결하는 특급 킬러입니다. 애덤은 그중에서도 가히 대적할 자가 없는 살상 병기 그 자체입니다.

시놉시스를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비키퍼’는 흔한 킬링타임용 영화입니다. 우선 매우 유능한 전직 특수요원이 거대한 범죄조직이나 정보기관을 홀로 상대한다는 설정에서 기시감이 듭니다. 소중한 존재를 잃고 복수에 나선다는 설정에선 ‘존 윅’ 시리즈도 떠오릅니다.

특히나 제이슨 스테이섬은 이런 장르에 특화된 배우이기도 합니다. ‘트랜스포터’나 ‘메카닉’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캐시트럭’(2021) 역시 스테이섬표 액션이 가이 리치 감독의 흥미진진한 연출과 맞물려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퓨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과 스테이섬의 만남도 ‘캐시트럭’ 같았으면 좋았으련만, 실상은 영 딴판입니다.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액션은 볼만 한데…나머지는 ‘글쎄’

영화 만듦새는 극 초반부터 드러납니다. 빌런으로 등장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콜센터는 이곳이 범죄조직이라는 것을 최대한 티 내고 싶어하는 듯 화려한 네온사인과 대형 스크린으로 번쩍거리고, 조직 간부는 악랄한 대사를 마구 내뱉습니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범인 스스로 범행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는 촌스러움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빌런 묘사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겁니다. 여기서부터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 전개가 지나치게 급박합니다. 등장인물들이 대사로 배경 설정을 빠르게 쏟아내고는 진지한 감정 연기를 펼칩니다. 미처 감정선에 공감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장르 본질인 액션에는 충실한 편입니다. 애덤은 보이스피싱 조직 콜센터를 찾아내고 건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무장한 장정들을 종이 인형처럼 다루는 제이슨 스테이섬표 액션은 ‘범죄도시’ 속 마동석처럼 통쾌함을 안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은 예상보다 훨씬 거대했고, 애덤은 나쁜 놈들을 송두리째 박멸하기 위해 끝까지 갑니다. 이 과정에서 FBI와 각종 요원, 용병까지 개입하지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허술하고 산만한 스토리…도저히 몰입 불가능

문제는 액션을 제외한 나머지입니다. 그중에서도 개연성과 현실성이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킬링타임 영화가 으레 그렇지만, ‘비키퍼’는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선 범죄자 잡겠다면서 무고한 경찰들을 너무 많이 잡는 애덤은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캐릭터입니다.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도 탐탁지 않습니다. 죽은 엘로이즈의 딸이자 FBI 요원인 파커(에미 레이버 램프먼)는 애덤과 보이스피싱 조직을 동시에 추적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표정 연기가 단조로워서인지 카리스마라곤 느껴지지 않고, 눈에 띄는 매력도 없습니다.

파커의 단짝 요원인 와일리(바비 나데리)는 감초 캐릭터로 투입됐지만 역시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조연들의 감정 연기는 시종일관 과잉됐고, 완급조절 없이 ‘강대강’ 대치만 난무합니다. 에이어 감독이 보여주기식 다양성에만 신경을 쓰느라 정작 캐스팅과 연기 디렉팅에는 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될 정도입니다. 파커를 맡은 램프먼은 흑인 여성이고 와일리 역의 나데리는 이란 출신 남성입니다. 극 중 FBI 팀장급 현장 요원도 아시아계, 대통령은 여성으로 그려졌습니다. 정치적 올바름(PC)을 지향하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영화에서 무엇보다 우선 순위로 둬야 하는 건 작품성입니다.

비현실적인 대목들도 거슬립니다. ‘비키퍼’에서 FBI와 CIA 등 미국을 대표하는 수사 정보기관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몰입을 방해합니다.

후반부에는 스토리 전개상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어 황당합니다. 애덤이 상대해야 할 빌런 역시 수시로 바뀌고 무능해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합니다.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정체가 분명해지는 비키퍼 프로그램도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 속 ‘트레드스톤’ 프로그램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실망만 안깁니다.

전체적으로 상황에 맞지 않는 심오하거나 의미심장한 대사들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자막 오타까지 있었습니다.

다만 스토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관객에게는 ‘비키퍼’가 괜찮은 팝콘무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개봉 이튿날인 4일 오후 현재 ‘비키퍼’의 CGV 골든에그 지수는 95%에 달합니다. 후기를 찬찬히 살펴보니 액션은 시원시원해서 볼 만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호평들에도 ‘생각 없이’ 혹은 ‘머리 비우고’ 보면 좋다는 전제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비키퍼’.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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