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과잠 시위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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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안 입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입은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우리’임을 확인시켜 주지만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한 이에겐 ‘학벌 과시’로 다가오기도 한다. ‘과잠’ 얘기다. 학과 잠바(점퍼)의 줄임말로, 이젠 대학 생활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과잠은 1865년 미국 하버드대학 야구팀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미국 각 대학의 풋볼, 농구팀으로 확산했고, 1950년대 유행하기 시작해 1980~1990년대엔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노래패나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티셔츠를 주문해 입었다. 1990년대부터 몇몇 학생들을 중심으로 과잠을 입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상당수 학생이 입고 다니면서 과잠은 널리 퍼졌다.

과잠의 장점은 경제성이다. 매일 무슨 옷을 입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하의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학과나 학부별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대학 새내기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와 반대로 너도나도 과잠을 입어 한때 고등학생들이 즐겨 입었던 노스페이스에 비교될 정도였다. 과잠이 학벌주의를 강화하고, 대학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게 문제가 되자 몇 년 전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에서는 교명이 들어갈 곳에 EQUALITY(평등)란 단어를 새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안티 과잠’ 판매와 펀딩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일반화돼 부정적 시각이 많이 줄어들었고, 과잠도 마치 대학 교복으로 인식될 정도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과잠이 종종 시위의 수단이 되고 있다. 4·10 총선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5일 부산대에서는 총학생회장이 학교 배지를 단 채로 모 총선 후보와 사진을 촬영하는 등 부산대 이름 아래 정치 편향적인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과잠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21일에는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통합을 반대하는 부경대 학생들이 학교 대학본부 앞에서 과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진정성이 없다”며 과잠 시위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위의 본래 목적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인 만큼 시대 변화에 따라 시위 전략과 전술의 변화로 읽힌다.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전통적 시위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측면에서 신선함도 있다. 시위 표출 방식은 시대와 세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시위라고 꼭 진중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론 부드러운 시위가 더 강렬할 수 있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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