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백지화 고수 안 돼, 적정 규모 협상해야”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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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염석란 교수

병원·권역외상센터 응급실서
24시간 주야간 당직 두 달째
“증원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합의 없는 2000명 동의 안 해
지역·필수의료 개혁은 반드시”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여전히 ‘의대 정원 증원 전면 백지화’를 내세우고 있어 의정갈등이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부산일보〉는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해 의정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진정한 의료개혁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 의료계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해법을 찾는다.

“20여 년간 단 한번도 응급의학과 지망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전공의 사직 사태를 겪으면서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동요하는 분위기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첫 관문인 필수진료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과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염석란(52)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다. 염교수는 21일 오전 9시, 전날 24시간의 주야간 당직을 막 끝내고 〈부산일보〉 취재진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응급실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피로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염 교수는 “피로가 누적돼 평소에도 머리만 대면 바로 잠 들 정도”라며 “잠에 잘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잘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에서 염 교수의 근무 시간은 의료계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지난 2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응급실에서 10시간의 주간 근무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 21일 오전 9시까지 내리 14시간을 권역외상센터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염 교수는 두 달 이상 비슷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휴대전화도 3개를 갖고 다니며 수시로 응급 콜을 받는다. 개인 휴대전화, 일반 응급실용과 외상 응급실용까지 3개다. 항상 선잠을 자는 처지다.

그는 의정 갈등을 두고 “답이 없는 상황이다”고 평했다. 염 교수는 “필수의료과 중 하나인 응급의학과 종사자로서 의대 정원 증원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현재 방식이나 2000명 합의 없는 숫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사실 외부에 목소리를 내거나 할 경황도 없이 쳇바퀴 돌리듯 사실상 고립된 채 일한다”고 전했다. 그는 “환자만 보기에도 솔직히 벅차다”고 털어놨다.

염 교수는 의료계에도 협의를 요청했다. 그는 “이 승자 없는 싸움을 중단할 때가 됐다”며 “의사 단체도 전면 백지화만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건설적인 협상이 되겠나. 대화 자체를 차단하려는 태도로는 국민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크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지역·필수의료 종사자로 일해온 염 교수는 무엇보다 지역·필수의료를 위한 의료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 교수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했다. 심폐소생협회 등 각종 연구회 활동을 비롯해 부산응급의료지원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오는 5월부터는 부산시 응급의료지원단장을 맡아 지역 응급의료정책을 제안하게 된다.

염 교수는 국민적 시선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전공의 사태를 겪으면서 필수진료과 조롱이 늘었는데 뜻을 가지고 필수진료과를 택한 전공의 제자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며 “전공의 중에는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 있지만 마음만 가지고는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전공의가 안심하고 복귀할 수 있도록 의료계 안팎에서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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