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굿바이, 핑크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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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여성 전용 원룸 월세 상대적으로 비싸
같은 재료 의상도 여성용 가격이 높아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인식이 그 배경

스포츠 남녀 의상 차별도 같은 맥락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개선돼야
여성을 차별하는 상술 설 자리 잃어

얼마 전 부동산에도 ‘핑크택스(Pink Tax)’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성 전용’ 원룸이나 ‘여성 안심 구역’에 위치한 부동산 매물의 월세나 보증금이 다른 매물에 비해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주요 10개 대학 중 원룸 월세는 이화여자대학교가 월 71만 원으로 가장 비쌌는데, 대부분 여성 전용 원룸 밀집 지역이었다. 부산에서도 부산대 인근 여성 전용 원룸과 일반 원룸을 비교한 결과, 별도 보안 장치가 추가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성 전용 원룸의 월세가 약 20만 원 비쌌다는 취재 결과가 있었다. 때문에 주로 여성들이 느끼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안전에 대한 불안을 이용한 마케팅이자 핑크택스라는 지적이다.

핑크택스란 여성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이유로 비용 등이 추가로 부과되는 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2015년 뉴욕에서 소비자원이 800여 개 제품의 남녀용 가격 차이를 조사한 결과, 기능과 품질이 비슷함에도 여성용 제품이 평균 7%가량 더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그 때문에 뉴욕시에서는 핑크택스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이 일어나고 법안이 발효되기도 했다. 작년에는 여성 속옷에 붙는 관세율이 남성 속옷보다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CNN에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여성용 제품의 구매를 위해 더 큰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이러한 핑크택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여성용 패딩의 충전량이 남성용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같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거나, 유명 패션 온라인 스토어에서 뒷주머니와 밴딩 처리 등을 없앤 여성용 슬랙스가 남성용보다 비싸게 판매되어 논란이 일었다. 같은 가격의 옷임에도 여성용으로 출시된 옷은 주머니가 너무 작거나 옷의 마감 처리가 허술하게 되어 있다는 취재가 이어졌다. 미용실에서 머리 커트 가격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어 있는 것도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한국소비자원 사이트에 따르면 서울 지역 여성 커트 1회 평균 가격은 2만 1308원으로 남성 1만 1692원에 비해 약 1.82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소비시장에서 제품에 대한 가격의 책정은 많은 요소들을 고려한 결과이기 때문에 단지 성별에 따른 차이만으로 차별에 이른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제품의 생산과 마케팅에 있어 수많은 고정관념이나 성차별 의식이 반영된 점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여성복과 남성복의 디자인이나 봉재 방식 등이 차이 나는 이유에 대해 의류 제조업체 종사자는 인터뷰에서 “여성복은 마감이 어떻게 됐든 겉 디자인이 예쁘고 유행 타는 옷을 만들면 무조건 잘 팔리지만 남성복은 가격 대비 질이 좋은 옷을 잘 만들어야 구매하기 때문”이라며 제작 단계에서부터 여성복과 남성복을 만드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실용성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눈에도 맞지 않거니와 패션업계의 이러한 오래된 제작 관행의 바탕에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이나 인식이 깔려 있다.

미용이나 패션업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나 제품에 더 많은 가격이 책정된 것은 여전히 여성에게 더욱더 예쁘고 아름다울 것으로 기대되는 고정관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육상 선수들의 경기복에 성차별 논란이 일어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남성 경기복이 반바지 형태지만 여성 경기복은 골반이 드러나는 수영복 형태였기 때문이다. 스포츠계에서도 경기 종목의 복장 규정이 성별에 따라 다른 관행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 특히 여자 선수들의 운동복은 치마 형태나, 더 짧은 반바지 혹은 반드시 비키니를 입어야 한다든지 해서 운동복의 기능적 측면과 상관없는 규정으로 여자 선수들의 복장을 규제해 왔다.

이제는 이러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많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21년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 선수팀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반바지를 착용하여 벌금을 냈지만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비키니 수영복 규정을 철폐시켰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독일 여자 체조 대표팀은 수영복 형태의 레오타드 대신 전신 유니폼을 입고 예선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편안한 복장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자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여성 육상 선수들의 경기복이 공개된 즉시 대중들의 비난이 쇄도하고 선수들 역시 기능성을 고려한 의상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변화의 한 증거다. 결국 사회 전반에 성차별적인 인식이 줄어들 때, 핑크택스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적인 상술이나 마케팅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 변화의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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