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대학이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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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요즘 대학이 몸살이다. 의대 증원의 문제로 많이 가려져 있지만, 글로컬대학사업, 첨단학과 증원, 무전공(자율전공) 확대에 이르기까지 학과 통폐합과 구조개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으로 텅 비어 가는 지역과 지역대학을 연계시키려는 정부의 의지이기도 하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의대교수들이 나서서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되는 측면이 있다. 파격적인 증원은, 동시에 교수나 시설 확충 등 정부가 나서서 파격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인데도 말이다. 물론 의대 정원을 당장 1년 안에 2000명을 증원시키겠다는 발상은 무척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이것은 입시 시장을 비롯한 대학과 학과 간, 범사회적인 엄청난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은 자명하다.

구조개혁 폭풍 맞닥뜨린 대학

취업 우선 서열 고착화 우려돼

개혁 대상 아닌 주체로 나서야

일반적으로 대학 학과의 정원을 조정하는 일은 학교의 인적·물적 자원 조정이 동반되는 까닭에 학과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일로 인식된다. 연구력은 물론 후학 양성을 통한 학문 분야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증원 혹은 감축에 따라 입학성적은 물론 학업 환경, 졸업생의 진로, 취업, 유관 분야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파급력이 상당하므로 학과의 정원 조정과 학과의 통폐합 등 대학의 구조개혁은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작년부터 정부에 의해 추진된 글로컬대학사업이란 게 있다. 글로컬(Glocal)은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Global)과 지역화를 뜻하는 로컬(Local)의 합성어인데, 비수도권 소재 30개 대학을 이른바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해 학교당 5년 동안 총 1000억 원을 지원한다. 이는 정부가 그간 해 왔던 대학 지원사업을 통틀어 최대 규모다. 비수도권 대학 입장에서는 사활을 건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지역산업과의 연계를 위한, 또는 그를 통한 지역 내 대학 간, 학과 간 통폐합 등 구조조정이 핵심이다. 작년과 금년에 각각 10개 글로컬대학을 선정하는 등 다소 숨 가쁜 속도로 진행 중이다.

또한 정부는 최근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반도체, 인공지능 등 특정 첨단 학과의 정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덕분에 수도권은 20여 년간 동결됐던 정원이 800명 넘게 증원됐으며, 이에 따라 막대한 수의 지역학생들이 또(!) 수도권으로 떠났다. 금년에도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의 증원이 예상되며, 유출된 인원만큼 다른 학과, 또는 지역의 다른 대학에서 지역 거점대로의 연쇄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또한 대학재정지원금을 빌미로 자율전공(무전공) 학과의 확대를 강요하고 있는데, 여러 학과의 정원을 감축하여 자율전공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만큼 정부지원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자율전공 학과의 학생은 일정 기간 수학 후, 정원의 제한도 없이, 심지어 문과 이과의 구별도 없이 학내에서 가고 싶은 학과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얼핏 보면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소위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 간의 불균형 심화가 크게 염려되는 상황이다.

문제가 완화될는지 심화될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이쯤 되면 우리 사회에서 도대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는 왜 하는가. 어느 학교 어느 학과에 입학하는지는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정작 그 학교 그 학과의 어떤 교수들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대학은 결국 일종의 라이선스 발급을 위한 취업준비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오로지 그 가시적인 결과, 얼마나 안정적이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기에 유리할 것인지만 관건이다. 그래서 전국의 의대로, 특히 지역보다는 수도권으로, 고생스러운 필수의료보다는 수입이 많은 특정 전공으로 몰린다.

마치 대학과 학과는 우리 사회의 서열을 결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어차피 무엇이든 돈으로 서열화되는 사회에서 대학도 학문도 설 자리는 없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과잉 경쟁을 멈출 수가 없으며, 지역은 지역대로 공동화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쟁에서는 살아남는다 해도, 사회도 대학도 미래가 안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한 반전은 대학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천박한 서열을 무력화시키는 다차원적인 반란이 필요하다. 숫자를 한 줄로만 나열한 1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다극화하며 다차원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미래를 절대로 살아낼 수 없다. 바야흐로 이런 새로운 세계로의 발돋움을 잉태하고 선도하는 것이야말로 대학의 역할이며 필요성이다. 결국 대학이 필요한 이유는 돈이 아니라 이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과 미래이기를 바란다. 명실공히 대학은 이 사회를 적시는 새롭게 솟아나는 맑은 샘이 돼야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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