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주연 ‘설계자’에 역대급 혹평 쏟아지는 이유는 [경건한 주말]
지난 29일 개봉한 범죄 스릴러 ‘설계자’가 화제입니다. 강동원을 주연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흥미진진한 예고편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개봉 직후부터 혹평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냉담한 반응이 이어지는지, 직접 보고 느낀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오프닝부터 불안한 만듦새…치밀하지 못한 ‘설계’
꽉 막힌 도로에서 잔뜩 짜증을 내는 운전자. 그는 내키는 대로 차를 몰지만, 오늘따라 방해 요소가 많습니다. 어수선한 골목길을 겨우 지나온 끝에 우연히 도착한 장소에서 운전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경찰은 사고사로 결론을 내리고, 언론도 수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합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사실 ‘설계자’들에게 피살된 타깃이었습니다. 영일(강동원)과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 등 설계자들은 살인을 청부 받으면 목표물이 우연한 사고로 죽은 것처럼 위장하는 킬러입니다.
언뜻 보기엔 신선한 소재이지만, 영화 좀 봤다는 사람들에겐 그리 새롭지 않습니다. 암살을 사고사로 위장하는 킬러는 제이슨 스테이섬 주연의 ‘메카닉’ 시리즈나 ‘킬러 엘리트’(2011),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의 ‘더 킬러’(2023) 등 해외 액션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봤던 내용입니다. 애초 ‘설계자’는 홍콩 영화 ‘엑시던트’(2009)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장편 데뷔작 ‘범죄의 여왕’(2016)으로 호평을 받았던 이요섭 감독이 두 번째로 연출한 장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리메이크작, 시작부터 좀 허술한 면이 있습니다. 경찰의 눈을 속여 우연한 사고사로 위장하려면, 타깃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모든 변수를 고려해 치밀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겁니다. 그 정도는 돼야 사고사를 ‘설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첫 ‘설계’ 장면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우연에 의존합니다.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타깃이 죽게 되는 과정이 좀 어설픕니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영화가 줄 수 있는 놀라움과 재미는 거의 첫 장면에서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감독이 첫 장면에 엄청난 공을 들입니다. 그런데 오프닝이 이 정도라면, 이 영화의 만듦새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벌써 예측이 됩니다.
무성의한 시나리오에 급박한 전개…관객은 피곤하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되는 이야기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타깃으로 그럴듯한 부패 권력자를 설정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비자금 의혹을 받는 검찰총장 후보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내정됐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영화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빈약함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영일이 지휘하는 설계자 팀의 타깃 제거 계획은 이번에도 우연과 우연의 합작으로 성공합니다.
이 작전 도중에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갑니다. 설계자 팀의 대장인 영일은 절친한 동료 짝눈(이종석)을 얼마 전 사고로 잃었습니다. 영일은 이 사고가 정체불명의 ‘상위 킬러’인 ‘청소부’의 짓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미심쩍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타깃을 제거하는 작전 중 ‘청소부’가 개입한 정황이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영일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동료들까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청소부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살인 청부 의뢰자인 영선(정은채)과 보험사 직원인 치현(이무생)의 뒤를 밟지만, 사건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집니다.
기본적인 구조는 흥미롭지만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이야기 흐름에서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여러 장치를 동원했지만 오히려 몰입을 방해합니다.
예컨대 음모론을 주장하는 극단적 유튜버 캐릭터들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 음모를 늘어놓고 중요 사건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들 유튜버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장면 전환이 너무 잦아져 쇼트와 쇼트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정신이 사나워지는 역효과만 낳습니다.
전체적인 연출도 아쉽습니다.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공감할 틈도 없이 사건이 급작스레 전개됩니다. 조연 캐릭터들은 존재감에 비해 설정이 과하고 행동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궁금하지도 않지만 ‘있어 보이는’ 사연을 뜬금없이 늘어놓는 신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남성 동료에게는 ‘누나’로 불리는 성 소수자 캐릭터는 정작 영일을 부를 때 ‘형’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 조연은 근처 관객과 기자가 동시에 헛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어색한 감정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캐릭터 설정도 서스펜스 기법도 과하다
배우들을 위한 비평을 해보자면,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 죽이는 일을 하는 냉정한 킬러들이 왜 서로를 그토록 아끼고 가족처럼 여기는지 모를 일입니다. 관객 입장에선 조연들의 감정 연기에 이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 캐릭터인 영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종일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독백을 내뱉는 강동원은 ‘더 킬러’의 마이클 패스벤더를 연상시킵니다. 멀리서 의뢰인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장면에선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영일은 이처럼 냉정하고 차분한 캐릭터인데, 극 후반부로 가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급발진’이 잦아집니다. 이와 별개로 잔뜩 깔린 목소리로 내뱉는 대사가 종종 불명확하게 들리는 문제도 있습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본 기법들이 남발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나 플래시백의 빈도가 필요 이상으로 많습니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초저역의 배경 음악은 볼륨이 너무 높은 데다 역시 빈번하게 삽입돼 요란하기만 합니다. 가혹한 평가일지 모르겠지만, 겉멋만 들었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습니다.
영화는 나름의 반전 요소를 갖췄습니다. 영일은 청소부를 둘러싼 음모론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되는데, 그 음모가 실재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앞서 우연의 연속으로 가능했던 ‘설계’들 역시 진짜였는지 망상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셉션’(2010)과 아주 유사한 열린 결말에 관객은 의문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열릴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러운 마무리에 대한 황당함에 가깝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개봉 2일 차인 30일 오후 3시 현재 ‘설계자’의 CGV 골든에그 지수는 61%에 불과합니다.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 완성도입니다.
히치콕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시나리오, 시나리오, 시나리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나 설계자의 시나리오는 허술하고 어설픕니다. ‘설계자’라는 제목에 걸맞게 시나리오 설계를 제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