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부산 무용단체 간 ‘협업’ 첫발… ‘예술 플랫폼’ 시동
제20회 부산국제무용제 결산
부산서 공동작업 후 브라질 공연
지속 가능한 연결성 모색 ‘성과’
전막 유료 공연 ‘솔루스 아모르’
무용예술인·대중 모두에게 호평
“내년엔 관객 참여형 늘릴 듯”
스무 살 성년이 된 제20회 부산국제무용제(BIDF)가 9일 밤 9시가 되도록 이어진 해운대 바닷가 특설무대 공식 초청 공연을 마지막으로 내년을 기약했다.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부산 곳곳에서 펼쳐진 올해 BIDF는 유럽, 중남미, 아시아 10개국(참여 아티스트는 15개국) 40여 공연 단체 400여 명이 60여 작품을 선보였다. 총 관람 인원은 8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BIDF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을 꼽는다면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인 헝가리 서커스 댄스 ‘솔루스 아모르’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과 해외 무용 단체와 부산 무용 단체 간 협업을 통해 ‘국제 예술 플랫폼’ 역할에 비로소 시동이 걸린 점이다. 공연예술 축제가 가지는 최대 맹점 중 하나겠지만,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행사가 아니라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연결성을 모색하고, 예술의 가치를 실천하는 길이 마련된 셈이다.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관객을 맞은 ‘솔루스 아모르’는 BIDF 특별 초청 콘셉트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전막 공연을 시도했는데 일반 대중과 무용예술인 모두의 이목을 끌 만했다. 3일간 극장을 찾은 관객은 1998명(약 2000명)으로 객석 점유율은 평균 83%에 달했다. 이 중 유료 관객 비율은 75%로 파악됐다. 무용 공연으로선 아주 이례적인 수치이다. 아시아 초연인 이번 작품을 보기 위해 서울 등 수도권에서 부산을 방문한 공연 관계자도 제법 눈에 띄었으며, 일부 관객은 3일이라는 짧은 공연 일정에도 불구하고 ‘N차 관람’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부산 시민 A 씨는 첫날 공연을 본 뒤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무용수들에 감동한 나머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다”며 BIDF 조직위원회를 통해 ‘솔루스 아모르’를 제작한 르시르켈컴퍼니 관계자에 현금 100만 원을 전달했다. 서울에서 온 무용예술 행정가 B 씨는 3일 차 마지막 회 공연을 보고 나와서 “부산국제무용제에 한 번은 와 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그동안 실천을 못 했는데 ‘솔루스 아모르’ 초청 공연 소식에 겸사겸사 부산에 왔고, 해운대 특설무대 공연도 덕분에 보게 됐다”고 말했다.
(사)부산국제무용제조직위원회 신은주 운영위원장은 “캐나다 퀘벡 시나르에서 ‘솔루스 아모르’를 보고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공들여 초청한 작품”이라면서 “국제무용제를 통해 수준 높은, 세계적인 명성의 작품을 부산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무용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신 위원장은 또 “이번 작품은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무용 애호가를 부산으로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고, 공연을 본 시민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좋은 공연 초청 못지않게 BIDF가 평소 공들이는 것은 국제 예술 플랫폼으로서의 부산국제무용제 역할이다. 신 위원장은 “부산의 젊은 무용가들이 끊임없이 해외로 뻗어나가길 바랐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며 “올해 20주년을 맞아 마음먹고 벌인 일이 ‘해외 단체-부산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였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첫 단추는 아주 잘 끼운 듯하다.
부산 경희댄스시어터와 브라질의 그룹 타피아스 무용단이 손을 잡은 부산-브라질 협업 프로젝트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번 BIDF 기간 3일 동안 부산의 4개 공간을 옮겨 다니며 ‘거리홍보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온라인 줌을 통해 석 달 정도 소통했으며, BIDF 개막 열흘 전 부산에 온 브라질 팀과 부산 무용단이 7일간 레지던시를 함께하며 ‘멀리 떠나는 길’이라는 작품을 공동 창작했다.
경희댄스시어터 대표 박재현 안무가는 “해외 무용 단체와 안무 협업은 처음인데 이렇게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게 좋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소통되는 게 정말 신기하고, 커넥션 자체가 좋다는 걸 느낀다”며 “그들도 우리도 부산을 새로운 감각으로 발견할 기회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들 프로젝트팀은 용두산공원과 송도, 영도 피아크, 영화의전당(당초 광안리 해변에서 우천 관계로 변경)에서 함께 춤을 췄다.
브라질에서 온 플라비아 타피아스 안무가는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이 있어서 좀 어려웠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연결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개방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새로운 놀라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류라는 생각이 든다”며 “7월엔 부산 팀을 브라질에 초청해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사우바도르 등 3개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협업 사례는 호주-뉴질랜드 안무가 작품에 부산 무용수들이 참여한 것이다. 이 작업은 지난해 부산국제안무가캠프를 통해 제작된 창작무용 ‘저항의 저항’을 이번에 BIDF 공식 초청작으로 올리면서 진행됐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공연 단체 ‘하우스 오브 샌드(House of Sand)’ 엘리자 샌더스 예술감독은 “1시간짜리로 완성한 작품을 야외무대인 점을 감안해 15분으로 줄이고, 일부 무용수도 바뀌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한국 무용수들의 빠른 적응력에 정말 놀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샌더스의 무용수로 함께 작업한 박소희는 “해외 안무가와 작업은 처음인데 특유의 바이브가 너무 좋았고, 무용수한테도 자유로운 디렉팅을 허용하는 등 한국 안무가와는 좀 달라서 앞으로 창작 작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참여 소감을 말했다.
이 밖에도 올해는 현대무용가 박은화 부산대 교수에게 BIDF 20주년 헌무를 의뢰해 ‘풍요의 바람’이라는 작품을 완성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박 교수는 “한국, 특히 바다 도시 부산과 함께 20주년을 기념하고 싶었다. 20년이 바람처럼 흘러갔지만 또 새로운 바람으로 부산 무용계가 활짝 열리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다”고 전했다. 신 위원장은 “‘풍요의 바람’ 공연이 이번엔 전문 무용수로 채워졌지만, 내년에는 일반인 참여용으로 확대해도 좋을 것 같다”며 내년에는 관객 참여형 공연을 대폭 늘려서 축제 같은 무용제 역할을 보강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놨다.
한편 올해 BIDF는 오락가락하는 비 소식으로 각종 공연 장소나 시간 변경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일반에까진 빠르게 알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그나마 지난 8일 1일 차 해운대 특설무대 공식 초청 공연은 영화의전당 측과 긴밀한 협의로 하늘연극장 안으로 빠르게 옮겨서 치를 수 있었다. 후문이지만 영화의전당은 이번 서커스 댄스 공연을 공동 주최하면서 무대에 못 하나 박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던 여타 공연장과 달리 서커스 앙카 등 공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무대에 설치하도록 적극 협조해 무용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