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줌마 출입 금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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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떤 여성을 ‘아줌마’라 불렀다면 싸우자는 이야기다.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고, 심하면 생명의 위협까지 각오해야 한다. 불과 1년여 전의 일이다. 수도권 도시철도 안에서 30대 여성이 자신을 아줌마라 부르며 휴대전화 소리를 줄여 달라고 말한 데 격분해 승객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법정에서 이 여성은 아줌마라 불러 기분 나빴다고 진술했고 재판부가 양형에 참작했다는 뒷이야기까지 전해졌다.

아주머니는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인데 이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 아줌마다. 원래 친족 중 숙모 고모를 부르는 말이었는데 그 정도 나이의 여자로 사회적 의미가 확장됐다. 어원은 ‘앚+어미’의 결합인 ‘아자미’다. ‘앚’은 본디 작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친족 호칭에서는 직계가 아닌 방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아저씨가 ‘앚+아비’에서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다. 아주머니가 ‘아기 주머니’에서 왔다는 말은 와전된 것이다. 이런 평범한 호칭이 ‘나이 듦’과 ‘억척스러움’의 상징을 넘어 칼부림을 부르는 멸칭으로까지 변한 것이다. 언어의 역사성이다.

호칭은 사회적 관계와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도는 우스개도 영향을 미친다. 운전할 때 선글라스 끼면 아가씨, 흰 장갑에 챙 달린 모자 쓰면 아줌마, 아줌마라 불렀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아가씨, 부른 사람 째려보면 아줌마 하는 식이다. 카페에서 차 한 잔 시키고 빈 컵 하나 더 달라고 하면 아줌마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이 호칭 인플레이션으로 진화한다. 이젠 아주머니도 별로 달갑지 않은 호칭이다. 식당에서는 ‘이모님’도 금기어다. 자신의 상승욕과 타인에 대한 차별욕이 강해진 우리 사회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 BBC가 최근 ‘한국의 한 헬스장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줌마의 출입을 금지하며 차별 논란에 불붙였다’고 보도했다. 인천의 한 헬스장이 ‘아줌마 출입 금지,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만 출입을 허용한다’는 공지를 붙인 것이다. BBC는 ‘아줌마’(ajumma)는 나이 든 여성을 가리키는데 한국에서는 무례하거나 불쾌한 행동에 대한 경멸을 담은 말로도 쓰인다고 설명했다.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처럼 ‘노아줌마존’의 등장이라고 했다. 업주 입장에서는 오죽하면 이런 고육책을 썼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배려와 존중보다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처럼 느껴져 씁쓸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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