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는 없어도 연은 있다"[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⑤1인 가구의 장례 이야기
형이 있지만 연락이 끊겨 사실상 무연고자인 박종현(가명·72) 씨는 “내가 죽더라도 공영장례로 내 시신이 처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내가 만나는 이웃과 친구들이 내 부고를 듣고 빈소를 차려주고 조문도 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규홍(가명·74) 씨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맡아 나를 가까이에서 돌봐주는 복지사님과 생활지원사님이 가족과 다름없다”며 “내가 만약 죽는다면 재산이 많진 않지만, 두 사람이 내 남은 재산으로 장례를 치러줬으면 좋겠고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은 두 분께 남겨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대성 기자
가족이 아예 없는 무연고자라도, 가족이 있더라도 관계가 뜸하거나 끊긴 사실상의 무연고자라도 사회적 가족은 존재한다. 친구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일 수도 있고, 자신을 돌봐주는 사회복지사일 수도 있다. 장례와 사후 정리 등에 대한 사회적 가족의 개입이 불가능한 지금의 제도와 시스템은 무연고자의 죽음을 더욱 존엄하지 못하고, 외로운 곳으로 내몬다.
<부산일보>는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지내는 1인 가구들을 만났다. 이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할지도 모르는 가족이 그래도 혹시나 나의 사후를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과, 주변의 외롭고 허망한 죽음을 여러 차례 목격하며 마음 속에 쌓인 우울감 사이에서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데 조심스러웠던 이들은 “사회적 가족이 자신의 장례를 치러주고 추모해주길 바란다”며 속마음을 터놓았다.
#“생애 마지막 인연이 가족”
5월 24일 부산 금정구 한 문화센터에서 만난 박종현(가명·72) 씨는 자신이 무연고자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띠동갑 형이 있지만, 연락을 끊은 지 오래다. 박 씨는 “최근 3~4년간 이웃과 친구 3명이 죽었다”며 “다들 별다른 지병도 없었는데, 나도 저들처럼 갑자기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이 사는 친구나 이웃이 갑자기 며칠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먼저 간 이웃과 친구는 무연고자로 처리돼 공영장례로 장례를 치렀다. 박 씨는 “그런 말이 있지 않느냐. 죽은 뒤에 술 한 잔 따라줄 친구가 있었으면 한다고. 나도 내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줄 이웃과 친구들은 있다”며 “혹시 내가 죽더라도 공영장례로 내 시신이 처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자신의 장례를 치러주고 전세 보증금과 은행에 있는 예금 등에 대한 정리도 도와줄 만한 친구가 4명 정도는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례와 사후 정리 문제와 관련해 미리 유언장 같은 글을 써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 쓴 유언장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도 막막해 이내 포기했다. 박 씨는 “집에 두거나 지갑에 넣어두더라도 죽고 난 뒤 발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며 물었다. 그는 이어 “미리 자신의 장례와 재산 정리에 대한 내용을 유언장 형식으로 써서 구청이나 동주민센터가 관리하고, 남은 사회적 가족이 희망할 경우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하루 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함께 만난 최규홍(가명·74) 씨는 이혼 후 혼자 살아왔다고 말했다. 자식은 없다. 사업을 크게 해 수십억 원을 버는 등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주변에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 가족은 물론 지인들에게 실망했다. 그 이후로 그들과 관계를 끊었고 혼자가 됐다. 지금 최 씨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자신을 지척에서 도와주는 금정구지역자활센터 이은정 사회복지사와 신숙희 생활지도사다. 두 사람이 가족과 다름없다는 최 씨는 “내가 만약 죽는다면 재산이 많진 않지만 두 사람이 내 남은 재산으로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줬으면 좋겠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은 두 분께 남겨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 씨 역시 장례나 재산 정리와 관련해 유언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는 “주민등록증 옆에 내가 죽으면 장례는 이렇게 치르고, 남은 재산은 어떻게 처리해 달라는 쪽지를 적어 남겨 놓으면 경찰이나 구청 직원이 그걸 보고 그렇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며 “공영장례를 치른다고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다. 장례를 치러주고 그런 수고로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만난 안정영(가명·78) 씨는 올해로 이곳에 입주한 지 7년이 됐다. 이혼 후 혼자가 된 지는 30여 년이 됐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사는 아파트 동에서만 12명가량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지켜봤다. 오며 가며 마주쳐 얼굴을 익히거나, 아파트 벤치에서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일상을 공유하던 이들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안 씨는 “똑같은 점펴를 입은 사람 3~4명이 와서 방에 짐을 다 들어낸다. 그러고 나면 또 다음 사람이 들어오고, 또 그렇게 죽으면 치워지고 다음 사람 들어오고 하는 게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지막도 저렇겠거니 한다”고 말했다. 내심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게 후회로 남은 이웃들도 많다.
그는 지난해부터 교회에 나가 만난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고 지내고 있다. 안 씨는 “내 장례식에 와서 나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분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진호(가명·58) 씨는 “재산도 어느 정도 있고, 조카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허망하게 죽음 이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며 “조카나 친구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내 재산 중 일부로 내 장례를 치러줬으면 하고, 유산은 사후 정리 등에 대한 보답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오른쪽)와 그의 친구. 이대성 기자
#“당신은 무연사로부터 자유롭나요?”
김진호(가명·58) 씨는 아버지는 7년 전,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외아들인 김 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는 독신 가구다. 터울이 있는 형과 누나가 있고, 조카도 있지만 평소 연락은 거의 하지 않고 지낸다. 김 씨는 “아직은 죽음이 막연하지만, 혼자 사는 처지에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을 순 없어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장례를 치러주고 장례식에 찾아와줄까 그런 걱정을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은 무연고자가 아니지만, 형과 누나가 먼저 사망하면 무연고자로 분류된다. 장사법에 따르면 연고자는 배우자, 부모, 자녀, 손자녀, 조부모, 형제자매만 인정된다. 형과 누나가 살아 있더라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평소 연락이 뜸했다는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할 경우 김 씨는 무연고자가 돼 지자체의 공영장례 절차에 따라 장례가 치러진다.
김 씨는 “재산도 어느 정도 있고, 조카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허망하게 죽음 이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며 “조카나 친구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내 재산 중 일부로 내 장례를 치러줬으면 하고, 유산은 사후 정리 등에 대한 보답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역시 장례와 유산 문제와 관련해 미리 유언장을 쓸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유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 데다 공증까지 받아야 한다는 주변의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정수환(가명·58) 씨도 사실상 무연고자다. 어머니는 15년 전, 아버지는 7년 전 돌아가셨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가족은 삼촌이 유일하지만 나이가 많으신 데다, 평소 연락도 뜸하다. 정 씨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다 6년 전 퇴사했고, 현재 남들보다 이른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고, 노후를 위한 재테크를 열심히 한 덕분에 연금으로 여생을 보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정 씨는 “좋은 뜻을 담아 유산을 기부했으면 하는데, 연고 없는 1인 가구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며 “무연고자나 무연고 가능성이 많은 1인 가구가 장례와 사후 정리 문제를 의무적으로 생전에 위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빨리 제도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연사회 갈수록 심화
취재진이 만난 1인 가구들은 “가족이 먼저 죽거나, 가족과 소원한 관계로 누구나 무연고자가 될 수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얘기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막연한 미래라 생각하지만, 누구든 죽음 이후의 장례와 추모, 사후 정리 등을 내 의지대로 결정하고 맞이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존엄한 권리를 놓치고 싶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일보>가 부산시에 요청해 받은 ‘부산 지역 무연고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 237명에서 2023년 619명으로 4년 동안 3배 가까이 늘었다. 무연고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 못지 않게 눈여겨봐야 할 점은 유족들의 시신 인수 거부 비율로, 5년간 평균 71%에 달한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가족이 있음에도 무연고자로 처리돼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이는 가족 관계가 갈수록 느슨해지고 단절되면서 소득과 연령, 계층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무연고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무연사 문제는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사람, 가족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된 사람, 이민이나 유학 등으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등 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 증가 속에 무연고자가 되는 경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연사회의 가속화 속에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와 추모, 사후 정리 등에 대한 사후 자기결정권 문제가 일부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에 국한된다고 보는 ‘사회복지’로서의 관점을 사회의 모든 계층으로 확대해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법과 제도, 시스템도 이에 발맞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회적 가족이 장례 주관자가 될 수 있도록 장사법이 개정(2023년 3월)됐지만, 이러한 취지를 실효적으로 작동하게 할 제도와 시스템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은 정부와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30년간 연락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지인인데, 바빠서 한 달 정도 연락을 안 했더니 무연고자로 분류돼 이미 공영장례가 치러진 경우가 있었고, 교장 선생님이 퇴직 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사례도 있었다”며 “혈연과 법률혼 중심의 연고자 범위를 친구와 이웃, 생활공동체의 동료 등 관계 중심으로 확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연간 무연고자 사망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일 부산시 인권위원장은 “가족은 있지만 관계가 소원해 무연고 사망자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늘고 있다”며 “생전에 친밀했던 지인이나 이웃 등과 서로의 장례를 치러주고 추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생전에 1인 가구의 사회적 연대감을 강화해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