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차별화 실패에 인력난까지… 가격 경쟁은 언감생심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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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마르는 지역 조선기자재업

국내 조선사 값싼 중국 부품 선호
중국 현지 건조 늘면서 의존 심화
인력 부족에 납기 어겨 외면당해
조선사와 상생 기술 개발 등 시급
국내 업체 발주 회사 혜택도 필요

지역의 영세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중국산 부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 전경. 부산일보DB 지역의 영세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중국산 부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 전경. 부산일보DB

중국산 부품 수입으로 인해 지역 중소·영세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가격 경쟁력이었다. 정밀한 기술력을 요하지 않는 단순 조립 가공품 등을 생산하는 영세 업체의 경우엔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인건비 격차를 줄일 방법은 더욱 요원해졌다.

■공장 가동률 절반으로 ‘뚝’

부산의 A조선기자재 업체는 선박용 밸브, 파이프 등 기본적인 선박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부품을 만드는 데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보니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중국산 부품에 밀려 지난해 대비 매출이 40%이상 급감했다. 인건비는 치솟는데 발주마저 줄어드니 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였다. A업체는 결국 공장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A업체 대표는 “한국산 밸브 하나가 100원이라고 치면 중국산 밸브는 60~70원 정도에 그친다”며 “대부분 조선사들이 저렴한 부품만 이용하려 하다 보니 발주가 자연스럽게 줄게 되고, 공장은 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중국에 선박건조공장을 짓고 중국산 조선기자재 부품을 쓰는 것이 지역의 영세 조선기자재업체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 조선사 상당수는 중국에서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을 건조 중이다. 이들 선박의 경우 중국 공세에 버티기 위해 원가 절감이 절실한 만큼 국내보다는 저렴한 인건비에 기술력을 갖춘 중국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10년간 풍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차원의 국산화 정책을 바탕으로 조선기자재 부품 대부분을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는 데 성공했다.

B업체 대표는 “중국 선박 기자재가 빠른 속도로 국산화를 이루면서 중국에서 배를 건조하는 조선사들은 자연스럽게 중국 업체 부품을 쓸 수밖에 없다”며 “한국 업체들은 납품할 수 있는 곳이 줄어들면서 기술개발 상용화 기회는 물론 부품 공급 기회마저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선기자재 업계의 인력난도 경쟁력 저하를 부추긴다. 부족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비싼 인건비를 지불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힘들게 부품 수주를 받아도 일손 부족으로 납품 기간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한 국내 조선소 관계자는 “AS문제 등으로 인해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 부품을 대부분 소진한다”면서도 “대형 조선소의 경우 활황으로 부품을 대량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업체들 생산만 가지고는 선박 건조 납기를 제때 맞추지 못할 우려가 있어 구입을 병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조선소-기자재 업체 상생협력 절실

조선기자재 업체가 중국산 부품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부품의 고급화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중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친환경 선박 부품 개발 등 사업 다각화도 절실하다. 정밀한 설계를 필요로 하는 엔진 부품 등은 여전히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연구개발을 토대로 한 사업 다각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중국 역시 선체 안전 감시장치 등 세밀한 기술을 요구하는 부품의 경우 한국산을 선호하고 있으며, LNG 선박기자재나 친환경설비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선박용 엔진, 보일러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C업체 대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 선박 부품을 개발하는 것이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의 살 길”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인력난을 극복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스마트 팩토리 등 공장 자동화 도입도 필수다. 원자재 가격에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D업체의 경우 공장 자동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중국산 제품보다 더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D업체 대표는 “공장의 자동화·스마트화를 통해 인력난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와 조선기자재 업체, 지역 대학이 산학협력 체계를 구축해 숙련도를 축적한 국내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고급 인력 양성에 나서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업계는 시장경제 논리상 정부와 지자체의 지나친 개입은 어렵지만, 다양한 지원책 마련은 가능하다고 기대한다. 정부 차원에서 국내 기자재 업체에 발주를 의뢰하는 조선사들에게 세금 혜택 등의 지원책을 제공하면 국내 기자재 업체들의 숨통이 다소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세 업체나 중소 업체가 기업의 체질 개선을 이뤄내고 보다 다양한 고부가가치 선박 부품을 공동개발할 수 있도록 R&D 센터를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지원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해운대 센텀2지구에 연면적 2만 평 규모로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이 추진 중인 친환경·스마트 선박 R&D클러스터 센터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조선소와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상생협력모델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 연구개발은 물론 여러 기능을 가진 제품을 대규모 단위로 묶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듈화’를 통해 지역 조선기자재업체가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산업과학혁신원 이우평 선임연구원은 자동화 항해 시스템 및 스마트 선박 분야 부품 모듈화에 성공해 글로벌 기자재 업체로 성장한 노르웨이의 콩스버그를 예로 들었다.

이 선임연구원은 “부산의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단순 부품 생산 시설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모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혁신 역량과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주요 앵커기업을 중심으로 조선기자재산업을 고부가가치 생산산업으로 재편한다면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넘어설 대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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