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동 수출국’ 오명이 낳은 ‘부모 알권리’ 찾기 첫 소송
“정체성·뿌리 찾기” 간절한 목소리
국가가 책임 있는 자세로 경청을
한국에서 태어난 직후 덴마크로 보내졌던 해외 입양인이 한국 국가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을 상대로 정보 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입양인 알권리 법률대리인단 등은 12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친부모에 관한 정보 일체를 공개하지 않아 입양인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며 소송 이유를 밝혔다. 친부모 동의가 없으면 정보 공개는 불가능하다는 현행법 때문에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알지 못하는 원초적 아픔을 겪어 왔다. 이번 소송은 인간의 정체성 찾기라는 기본적 권리와 관련된 문제적 소송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송 결과가 주목된다.
한국은 ‘아동 수출국’의 오명을 뒤집어쓴 지 오래다. 1960~80년대 연간 수천 명에 달하는 입양아를 해외로 보내면서 숱한 인권침해 사례를 낳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입양인 단체들은 기록 위조, 서류 조작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든 불법을 저질렀다. 부산에서도 특정 입양 기관이나 복지시설에서 탈불법적으로 이뤄진 입양 사례들에 대한 증언이 수두룩하다. 입양인들은 입양 뒤에도 해당 국가의 시민권 획득 같은 기본적 혜택이나 관리를 받지 못한 것은 물론 각종 학대와 차별에 시달린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이 아닐 수 없다. 해외 입양 관련 의혹 조사는 오는 11월 1차 조사가 완료된다.
이번 친부모 정보 공개 소송은 이런 해외 입양인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현행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친부모 동의가 없으면 친부모 정보 공개는 불가능하지만, 사망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동의 여부에 관계 없이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친부모 동의가 없을 때 인적 사항은 제외되더라도 입양 당시 친부모 나이, 입양일, 입양 사유, 친부모 거주지 등은 제공돼야 한다. 그런데도 입양 정보공개 사업을 주관하는 아동권리보장원은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게 소송 제기 측의 주장이다. 입양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여전히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양인에게 친생부모 정보는 단순한 개인 정보가 아니다. 입양인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다. 물론 친생부모가 말 못 할 사연 때문에 정보 공개를 꺼리는 경우도 있으리라 충분히 짐작된다. 하지만 일방적 정보 차단이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염려해 인간의 기본권을 막는 처사는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보 공개 여부를 오로지 친생부모의 의사에만 맡기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입양인들은 어릴 때 타국에 보내져 불법과 무관심 속에서 고통받았다. 이제라도 국가가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 해외 입양인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