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사건'이라기보다 분쟁 혹은 전쟁을 재현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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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 'The Incident'

하태범 'The Incident' 영상 작품 중 스틸 컷.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하태범 'The Incident' 영상 작품 중 스틸 컷.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영문 제목 ‘The Incident’(‘사건’이라기보다 ‘분쟁’ 혹은 ‘전쟁’이라는 해석이 더 적절할 듯한)는 하태범이 2016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2015 국립현대미술관-SBS문화재단, 4인), ‘송은미술대상 우수상’(2013 송은문화재단), ‘23회 중앙미술대전 우수상’(2001 중앙일보사) 등의 경력을 가진 촉망받는 작가이다.

‘The Incident’는 3분 30초짜리 하나의 영상이 상영되는 단-채널 비디오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하얀 종이로 작지 않은 어느 도시의 시가지를 정교하게 재현했다. 어쩌면 재현이라기보다 그런 느낌이 들도록 가로등, 전선 줄, 나무, 심지어 자동차까지 종이로 만들고, 또 심지어 건물에 발코니와 창문도 정교하게 제작했다. 영상으로는 시가지 규모를 짐작할 수 없지만, 긴박한 분쟁을 재현하기에는 충분한 크기인 듯하다.

하태범의 거의 모든 작품 특징 중 하나인 단색, 그것도 흰색으로만 이 시가지를 만들었다.

색이 없는 시가지 오로지 흰색만 존재하는 공간을 창조했다. 이렇게 분쟁이 발생하는 공간을 만들고 나면 다음으로는 전쟁 장면을 만든다. 흔히 보는 전쟁처럼 군인들이 서로 숨어서 총을 쏘는 그런 장면은 아니다. 이 비디오에서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총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실감 나게 들릴 뿐이다. 여기에 건물에 총알이 박히고 벽이 부서지고 창문이 날아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총소리와 함께 들으면 격렬한 전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도로에 나뭇가지와 벽돌이 흩어지고 가로수가 쓰러진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모든 장면은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과 작위적으로 실행되는 전투 장면이다. 총알이 박히는 장면도 비비탄총으로 연출한 장면이다. 그래도 종이를 뚫고 지나가는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실제 전투 장면처럼 연출한 전쟁영화와 겹쳐 빠져든다.

무언가를 재현한 미술작품은 분명히 진짜가 아니지만, 관람자는 진짜로 착각한다. 착시와 착각이 미술을 잘 감상하게 하는 중요한 기재 중에 한가지이다.

이 작품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감상해야 하는가는 결정할 수 없다. 매번 볼 때마다 다르게 전쟁 장면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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