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가르며 일어서는 짜릿함…서핑 매력에 풍덩! [혼잘알]⑫
“전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요.” 국민예능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남긴 ‘혼자놀기’ 어록은 내향인들의 공감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사람과 친해지지 않아도, 나 홀로 재밌게 놀러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이왕이면 친근하고 익숙한 '츤데레 스타일 명수체’로 전해드립니다! 잠깐만 ‘반모’(반말모드)할테니, 화내지 마시길~.
서핑 해본 사람 손! 여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상 스포츠 중 하나가 서핑인데, 실제로 서핑을 즐겨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더라고. 사실 나도 지금까지 서핑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난이도가 높다는 인식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는 편인 것 같아.
그래서 몸치인 내가 ‘서핑 메카’라는 부산 해운대구 송정 바다에서 직접 체험해봤어. 입문자를 위한 하루짜리 강습을 받아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추천할 만하더라고. 피부가 새까맣게 탈 정도로 정신 없이 파도 탄 이야기 좀 들어볼래?
송정 바다에서 즐기는 서핑.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서핑은 요새 유행하는 ‘스탠드업 패들보드’(SUP)와 비슷해 보이는데, 둘 다 체험해본 입장에서 느낀 차이는 제법 컸어. SUP는 패들(노)을 저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되기 때문에 잔잔한 바다에서 즐기기 좋아. 또 일어서서 노를 저어야 하기 때문에 보드 면적이 넓은 편이야.
반면 서핑은 파도를 타면서 나아가야 해서 상대적으로 제약이 큰 편이지. 파도가 잔잔한 바다에서 타기엔 적합하지 않다 이 말이야~. 또 파도를 타면서 좁은 보드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균형 감각도 필요해.
난이도가 높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 송정에 있는 수많은 서핑숍이 입문자를 위한 일일 강습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거든. 5만~6만 원을 내면 1~2시간짜리 강습을 받은 뒤 무제한으로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어. 강습을 받지 않고 슈트와 보드만 대여하려면 3만 원 정도 내면 돼.
평일 오전에도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의 모습.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보이더라고.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포털사이트에 ‘송정 서핑’을 검색하면 강습 예약이 가능한 업체들을 조회할 수 있어. 나는 깔끔해 보이는 업체 한 군데를 골라서 평일 오전 10시로 예약하고 시간에 맞게 도착했어. 짐을 보관하고 슈트로 갈아입은 다음 강사를 따라서 그대로 송정 바닷가로 향하면 돼. 이날 같이 강습을 받았던 3명은 모두 타지 사람이었어. 전날부터 연이틀 서핑을 즐기고 있는 40대 남성 서 모 씨, 그리고 김민영(48), 이솔(26) 모녀와 한 팀이 됐어. 서 씨는 인천에서 왔고, 김 씨는 이날 새벽 자가용으로 평택에서 출발해 광주에서 딸을 태우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네. 다들 열정이 대단해~.
서핑숍은 송정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도보로 2~3분 만에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었어. 곧바로 해변에서 강습을 받았는데, 핵심 포인트 몇 가지만 소개해볼게.
서핑보드 부위별 명칭은 앞면이 노즈, 옆면이 레일, 후면이 테일이야. 바다에서 보드에 오르려면 두 손으로 레일을 잡고 몸을 당겨서 옆으로 올라탄 다음 머리와 몸통을 노즈 쪽으로 돌리면 돼. 파도를 타면서 일어설 때는 몸을 옆으로 돌려야 하는데, 보통 오른발잡이면 오른발을 보드 뒤쪽에 두는 게 편해.
강사가 바다에서 사진을 찍어줬어. 날이 흐렸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사진을 몇 장 건졌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일어서는 방법은 어차피 글로 봐도 감이 잘 오지 않을 테니 직접 배워봐야 해. 고개를 숙이지 말고 시선을 먼 쪽에 두면서 일어나야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안전장치로는 보드와 발목을 연결하는 ‘리쉬’라는 줄이 있어. 혹시 깊은 곳에 빠지게 되면 줄을 잡아당겨서 다시 보드 위로 올라가면 되니까 당황할 필요 없어. 애초에 파도를 타기 좋은 지점은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 오히려 파도를 타다가 바다에 뛰어들 때 발목이나 무릎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정도야.
이론 수업은 끝났고, 이제 강사와 함께 직접 바다로 들어가서 실습을 해볼 시간이야. 강사가 한 명 한 명 직접 파도를 타보도록 도와줘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일어설 수 있었어. 처음 파도를 타며 일어섰을 때의 짜릿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다만 매번 일어서서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건 아냐. 잘 가다가도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아예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어.
서핑 마니아 서 씨는 곧잘 탔어. 근데 김 씨는 일어서서 타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어. 딸은 정말 쉽게 탔는데, 솔직히 나보다 훨씬 잘했어. 강사는 “여성분들이 힘을 빼고 타는 걸 잘해요. 그래서 초심자 때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잘 타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위로해줬어. 서 씨는 “원래 처음부터 일어서는 게 쉽지 않아요. 김 씨가 정상이고 나머지 두 분이 정말 잘 타는 거에요”라고 칭찬했어.
파도를 타며 쉽게 일어나는 딸 이솔(왼쪽) 씨와 아직 파도에 적응 중인 엄마 김민영 씨의 모습이야. 이솔 씨 제공
나는 초반부터 파도를 타고 일어서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엔 몇 번이고 물에 빠지면서 짠물을 잔뜩 먹었어. 이솔 씨 제공
수상스포츠 특징은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거야. 강사의 도움으로 바다에서 간단히 사진도 찍고 파도 몇 번 더 타고 나니 어느덧 점심 먹을 때가 돼서 다 같이 서핑숍으로 돌아갔어. 각자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을 챙겨 먹었는데, 어색한 분위기도 깰 겸 간단한 ‘스몰토크’를 시도해봤어.
서 씨는 올해 4월 우연히 송정을 찾았다가 서핑에 빠졌어. “혼자만의 자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게 서핑의 매력”이라는 게 서 씨 설명이야. 보통 스포츠는 경쟁을 해서 상대를 이겨야 하는데, 서핑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테니스를 비롯한 각종 운동을 즐겼던 서 씨는 최근엔 개인용 보드를 따로 구매했을 정도로 서핑에 푹 빠졌어. 멀리 인천에서 여기까지 오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만큼 송정 파도가 좋다”고 답했어. 다른 지역에 비해 파도의 빈도가 잦아서 서핑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하네. 다만 인기가 좋은 만큼, 주말에는 바다가 서핑객들로 가득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야. 사실 평일인 이날도 파도를 타다가 서로 부딪힐 뻔했을 정도로 서핑객이 적지 않았어.
파도를 기다리는 서핑객들의 모습.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부산 관광을 위해 송정으로 온 김 씨 모녀는 이번에 처음 서핑을 체험했어. 김 씨는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힘드네요”라며 “물 먹느라 정신 없었지만 바다에서 노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라고 말했어. 두 번째 시도 만에 보드에서 일어선 딸 이 씨는 알고 보니 유도, 수영 등 운동 경력이 많은 스포츠 마니아더라. 이 씨는 “나는 한 번 만에 일어설 수 있을 줄 알았다”면서 오히려 아쉬워했어.
서핑객들 만족도는 높은데, 서핑숍에는 고충이 있었어. 요새 심한 불경기라 그런지 평년에 비해 손님이 반토막 났다는 거야. 송정에 있는 서핑숍들이 비슷한 형편인데, 대부분 업주들이 서핑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달리 할 만한 일도 없어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 30대인 이 업체 대표도 13세부터 서핑을 즐기기 시작해 26세부터 서핑 강사로 일했고, 가족들도 서핑업에 종사해왔어. 우리를 가르친 강사는 대표의 친동생이었고.
서핑숍 대표와 강사가 보유한 각종 서핑 관련 자격증과 수료증. 서핑에 진심인 김 모 대표는 서퍼들이 급감한 배경으로 불경기를 꼽았지만, 자신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토로했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토크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바다로 나갔어. 이제 강사는 휴식을 취하고 강습생들끼리 자유시간을 즐길 차례야. 친절하게도 서 씨가 코치 역할을 해줘서 몇 가지 요령을 더 익힐 수 있었어.
서핑은 기다림의 미학도 있는 스포츠야.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파도를 고르는 맛이 있어. 해변까지 길게 가는 좋은 파도인 줄 알고 올라탔다가 도중에 동력을 잃고 멈추거나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흔했어. 그만큼 좋은 파도를 탔을 때의 쾌감도 컸어. ‘물 들어올 때 보드 타는’ 재미는 서핑을 해본 사람만 알 수 있지.
서 씨 말에 따르면 이날 송정 파도는 빈도가 정말 좋은 편이었다고 해. 다른 날 다시 오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을 정도로 평소보다 파도가 잦았고, 덕분에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거라고 하네.
좋은 파도를 기다리며 먼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일행들 모습이야. 해변까지 데려다 줄 양질의 파도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파도 보는 눈’을 길러야 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김 씨 모녀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꼭 일어서고 만다”고 다짐하며 승부욕을 보이던 김 씨는 ‘중꺾마’ 정신으로 여러 번 도전한 끝에 결국 파도를 가르며 우뚝 서는 데 성공했어. 이 씨는 보드에 앉은 채 휴대전화 카메라로 엄마의 모습을 담거나 일명 ‘MZ샷’(휴대전화를 높이 들어 촬영하는 셀카)을 찍는 등 열심히 추억을 쌓았어.
서핑보드와 바닷물을 배경으로 찍으면 더욱 ‘힙’한 ‘MZ샷’을 건질 수 있지. 이솔 씨 제공
바다에 수십 번은 빠지다 보니 시간이 정말 잘 갔어. 놀다 지쳐 서핑숍으로 돌아오니까 오후 5시쯤 됐어. “서핑하는 동안 잡념이 싹 사라지지 않나요”라는 서 씨의 말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3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어. 인근에 숙소를 잡은 김 씨 모녀는 “저희는 내일도 여기로 서핑하러 올 거에요”라며 웃었어.
서 씨한테 몇 가지 팁도 배웠어. 4월부터 서핑을 시작한 서 씨는 한여름을 제외한 해수욕장 폐장 시기에 사람이 적어 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어.
또 파도타기 좋은 시간대를 ‘WSB FARM’이라는 앱으로 알 수도 있어. 웹캠으로 각 지역 바닷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파도가 얼마나 강할지 예보도 볼 수 있으니 서핑객이라면 이 앱을 활용하는 게 필수야.
18일 오후 ‘WSB’ 앱으로 확인해본 송정 바다 파도 상황. 파도의 특징과 수온 등 서핑에 참고하기 좋은 사항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유용해. WSB 앱 캡처
마침 식사 시간이라 서 씨와 함께 인근 맛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게 됐어. 끝까지 이름도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은 서 씨와 특별한 기약까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서핑숍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각자 발걸음을 돌렸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