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나면 일단 도망… ‘김호중 따라 하기’에 경찰 골머리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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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승용차 전복 사고 40대
도주 4일 후 자수 “음주 아니다”
전국적으로 유사 사건 잇따라
“현장 이탈 땐 강한 처벌” 목소리

지난 13일 오전 1시께 40대 남성 A 씨가 부산 해운대구청 어귀삼거리에서 벤츠 승용차를 몰다 가로등을 들이받은 후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 부산경찰청 제공 지난 13일 오전 1시께 40대 남성 A 씨가 부산 해운대구청 어귀삼거리에서 벤츠 승용차를 몰다 가로등을 들이받은 후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 부산경찰청 제공

교통사고를 낸 후 현장에서 도망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수 김호중 씨가 음주 교통사고 후 현장에서 도망간 일을 모방하는 것이라며 SNS 등에서는 관련 사건을 ‘김호중 수법 따라 하기’라고 부른다.

지난 13일 오전 1시 부산 해운대구청 어귀삼거리에서 벤츠 승용차를 몰던 운전자가 가로등을 들이받은 뒤 차량을 버리고 달아난 사건(부산일보 7월 15일 자 10면 보도)도 유사한 사건으로 꼽힌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40대 남성 A 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A 씨는 사고 당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택시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사고 4일 만인 지난 17일 경찰에 자수해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사고가 나자 A 씨가 차량에 두고 간 휴대전화와 지갑 등 소지품을 토대로 인적사항을 특정해 추적하던 중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당시 수면제를 복용한 후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다"며 "처벌을 받을까 겁이 나 차량을 두고 떠났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A 씨가 주점에서 나오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하고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사고 직전 술을 마셨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A 씨가 사고 전 복용했다고 주장하는 수면제 성분을 확인하기 위해 A 씨의 모발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경찰은 마약 투약 등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향후 음주나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확인되면 추가 혐의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교통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 없이 도망치는 사건이 전국적으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대전 중구의 한 교차로에선 50대 화물차 운전자가 동승자와 함께 교통사고를 낸 후 차를 버리고 그대로 달아났다. 이 운전자는 사고 당일 경찰에 자진 출석해 “술을 조금 마셨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음주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검출되지 않았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강남에서 전직 축구선수가 음주 사고를 내고 집으로 도주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음주 후 사고를 내고 도주한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 사건이 알려진 이후 최근 이와 유사한 수법이 성행하면서 경찰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음주 수치가 제대로 측정이 안 되면, 음주운전보다 형량이 낮은 사고 후 미조치 수준의 혐의 적용 후 사건이 종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주 외에도 음주 운전 후 술을 더 마셔 음주 측정을 어렵게 만드는 '김호중 술타기 수법'도 등장했다.

김 씨는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서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도로 택시와 충돌한 뒤 달아나고, 매니저를 대신 자수시킨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 씨는 사고 10일 만에 범행을 시인했지만, 정확한 음주 수치를 측정하지 못하면서 검찰 기소에서 음주운전 혐의가 제외됐다.

부산의 한 일선서 교통과장은 “사고 당시 정확한 음주 수치를 특정 못하면 음주운전 혐의 적용이 어려워 음주를 한 정황이 담긴 CCTV나 모발 채취 등 증거를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한다. 수사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교통사고를 내고 현장을 이탈하는 운전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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