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 김건희 여사 조사, 의혹 해소커녕 불신 더 키운다
수년간 지지부진하다 특혜 논란까지
‘법리와 원칙’ 검찰 존재 이유 묻게 돼
서울중앙지검의 지난 20일 김건희 여사 소환 조사와 관련해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틀 뒤 국민에게 사과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검찰 수사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김 여사 소환 조사가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는 등 특혜로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총장의 속내는 훨씬 복잡할 듯하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배우자의 검찰 소환 조사가 총장인 자신에게 사전 보고도 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패싱’ 논란이 세간에 비등한데, 검찰 조직의 기강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검찰이 현재 처한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총장 자신은 서울중앙지검을 질타할 만큼 떳떳한가.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2022년 9월 취임한 이 총장이 2년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분명한 조사나 수사를 실행했다는 정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이 이번에 김 여사를 소환한 이유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두 의혹 모두 국민적 관심이 극히 높은데도 이 총장은 그동안 그에 대한 조사나 수사를 뭉개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총장의 대국민 사과가 진정성을 의심받는 까닭이다. 결국 지금 검찰의 혼란은 이 총장의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여하튼 김 여사 소환 조사 특혜 논란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검찰과 김 여사 간 ‘약속 대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민정수석실 부활과 함께 검찰 인사를 기습적으로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발탁된 인물이 대표적인 ‘친윤석열계’로 꼽히는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다. 당시 인사에 대해 세간에선 이 총장을 김 여사 관련 수사지휘 라인에서 배제하기 위한 정지작업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 총장이 겉으로나마 김 여사 소환의 필요성을 자주 천명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특혜 논란에서 그런 의혹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이런 형편이니 향후 김 여사에 대한 검찰의 조사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번 김 여사 소환 조사와 관련해 이 지검장이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둥, 이 총장의 과거 행적을 고려하면 이 총장과 서울중앙지검의 ‘짜고 치는 고스톱’일 가능성이 크다는 둥 온갖 해석이 난무한다. 조사가 실제로 이뤄지기는 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그만큼 크다. 스스로 법 앞에 권력자 가족은 예외임을 보여 준 검찰이니, 평소 “법리와 원칙에 입각한 엄정한 수사” 운운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검찰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