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명품을 찢어서 만든 작품
■ 이광기 '뉴리메이크-루이비통'
이광기 '뉴리메이크-루이비통'.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여기에 루이비통 백이 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이어붙인 흔적이 있다. 누군가가 조각난 가방의 부분들을 가까스로 원상 복구한 모양새다. 가방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영상을 보니 더 놀랍다. 영상 속의 누군가가 루이비통 백을 언박싱 한 후에 갑자기 그것을 가위로 오리고 찢어버리기 시작한다. 가방이 본래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형태가 되었을 때 그는 다시 가방 조각들을 접착제로 이어붙여 원래의 상태로 만들어낸다. 고가의 명품을 애지중지 아끼지는 못할망정 영상 속의 주인공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단 말인가.
이 작품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광기의 ‘뉴리메이크(NewRemake)’ 연작 중 하나다. 그는 특유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통해 동시대의 통념에 도전하고 정형화된 제도에 균열을 내고자 시도해왔다. ‘뉴리메이크’는 석고상, 다기 세트, 전화기 등 여러 가지 상품들을 강제로 해체하여 그것의 용도를 무용(無用)하게 만든 후 다시 작가의 개입을 통해 재조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본 작품은 흔한 일상의 용품이 아닌, 2008년 기준 정가 2백 2십 4만 5,000원의 가치를 지녔던 명품백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더욱 강렬하고 대담한 인상을 심어준다.
최초 기백만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이 물건이 무용지물의 상태로 변신하는 데는 그닥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고작 가위질 몇 번에 형편없어진 외양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쾌한 배경음악은 이 파괴의 행위에 한층 리듬감을 더해 주기까지 한다. 결국 이 가방의 최종 운명은 ‘원형의 모습에 가까워진 뉴리메이크 루이비통 백’이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의 노동력이 더해진 새로운 정신이 깃든 백이다. 바로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작가가 재조립하여 탄생한 뉴리메이크 루이비통 백의 가치는 어떻게 측정될까. 누군가는 멀쩡한 가방을 조각내놨으니 아무리 접착제로 붙일지언정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티스트의 찢고 이어붙이는 수고로움, 그리고 창작이라는 정신적 가치까지 덧붙여진 결과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오래된 명품을 다른 형태로 리폼하는 행위에 대한 논쟁을 본 적이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옛 물건을 오랜 시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주를 이루었지만 일각에서는 수선된 물건을 여전히 해당 브랜드 제품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기도 했다. 혹자는 수선하는 장인들의 솜씨가 더해졌으므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상품의 가치는 상대적이고, 그 전이과정은 자유분방하다. 작품은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들이 찰나의 사이에 형편없어지기도, 경이로워지기도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루이비통 백을 다루는 작가의 손놀림은 가벼워 보인다. 그 가격이 어떠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말이다. 이해리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