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노역’ 문구 없어도 세계유산 등재되는 사도광산
일본 언론들 “양국 사전 합의” 논란
향후 약속 이행 정부 외교력 시험대
유네스코가 27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세계유산 등재는 관례상 21개 회원국의 전원 동의 방식으로 정해지는 만큼 우리 정부의 입장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을 설치하고 노동자 추도식을 매년 개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우리 정부가 전격 수용한 결과라 하겠다. 그런데 사도광산 역사의 핵심인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이 명시되지 않은 점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등재에 동의한 것이라면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사도광산 등재 결정 이후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내용이 심상치 않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 ‘일본 정부가 강제노역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에서 상설 전시를 하고 당시 생활상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도 ‘직접적인 표현은 피하면서도 어려운 노동 환경을 자세히 전시함으로써 합의점을 찾았다’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강제노역이 아니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모두가 조선인 노동자 강제성 표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협의한 바 없다는 우리 정부 주장과 배치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해명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1500여 명이 강제로 동원된 사도광산은 조선인들에게 죽음의 노역장이었다. 그동안 일본이 일제의 어두운 과거를 애써 숨기거나 부인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등재 신청 때는 사도광산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해 ‘등재보류’ 권고를 받기도 했다. 돌아보면, 우리가 일본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탄광 등재 때도 조선인 강제동원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설치하기로 했으나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과거의 일본 행태로 봤을 때 이번에도 얼마나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할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번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된 전시 공간 설치 등의 진전된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향후 일본 정부가 전시물이나 추도식 개최 과정에서 구체적인 강제성을 제대로 부각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제 우리 정부가 일본의 후속 조치를 성실하게 감시하고 촉구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권고 사항이라 제재할 방법은 마땅히 없는 처지다. 정부가 강제노역 표현에 대한 필요성을 적극 설득해 일본과의 협상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결과라면 외교력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 역시 강제노역의 흑역사를 지운다면 유네스코 유산 등재가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