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자산 보호' 가상자산법, 제2 테라·루나 막을까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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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상장 600개 재심사 진행
불공정거래행위 규율 체계 마련
사고 발생 시 투자자 입증 '한계'
의무 보호 대상, 예치금 제한 문제

2022년 국내 투자자 20만 명이 3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을 입은 ‘테라·루나’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가 지난해 5월 11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2022년 국내 투자자 20만 명이 3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을 입은 ‘테라·루나’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가 지난해 5월 11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가상자산 최초 업권법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테라·루나’ 사태부터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전 의원 코인 의혹 등 각종 논란 속에서 마련된 가상자산법이 투명한 가상자산 시장을 조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가상자산법 시행안에는 △이용자의 예치금·가상자산 보호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감독·제재와 불공정거래행위자에 대한 조사·조치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가상자산법은 2022년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에 충격을 줬던 테라·루나 사태의 재발 방지책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달러와 연동해 안전한 ‘스테이블 코인’으로 투자자의 이목을 끌었던 테라의 실체가 ‘폰지 사기’로 밝혀지면서 국내 피해자만 약 20만 명, 피해 금액은 3000억 원에 달했다. 막대한 피해 규모에도 피해자 구제부터 가해자 처벌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테라-루나 사태를 방지하고자 2년 만에 시행된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고객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거래소에 상장된 기존 600개의 가상자산에 대한 재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6개월간의 재심사 과정에서 기술·보안 위험 등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가상자산은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된다. 가상자산 발행기업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된다.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규율체계도 마련됐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와 시세 조종 행위를 금지하고, 사기적 부정 거래 행위를 차단해야 한다. 가상자산사업자는 이상 거래를 상시 감시하고, 불공정거래 행위가 의심되면 금융당국에 통보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조사와 수사기관의 수사를 거쳐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3~5배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부당이득 규모가 50억 원을 넘어가면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다. 부당이득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 손상액의 2배 이하 또는 40억 원 이하 과징금 중 큰 액수가 부과된다.

가상자산거래소는 해킹 등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고객이 보유한 가상자산의 80%를 ‘콜드월렛(Cold wallet)’에 별도로 보관해야 한다. 콜드월렛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오프라인 상태의 지갑을 말한다. 하드웨어 지갑, USB 보관 등의 형태가 대표적이다.

온라인 방식으로 작동되는 ‘핫 월렛(Hot wallet)’에 보관된 가상자산의 5% 이상에 해당하는 현금은 유사시 고객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적립해야 한다. 거래소는 사고에 따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준비금도 마련해야 한다. 원화마켓 거래소는 최소 30억 원, 코인마켓 거래소·지갑·보관업자 등은 최소 5억 원이다.

가상자산사업자는 은행에 이용자의 예치금을 맡겨야 한다. 은행은 국채증권이나 지방채증권 등 안전한 자산으로만 해당 예치금을 운용할 수 있다. 이후 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에 운용 수익을 지급하면, 가상자산사업자는 해당 수익에서 발생 비용 등을 제외한 ‘이용료’를 이용자에 지급해야 한다.

이용료는 거래소가 고객 예치금에 대한 이자 성격으로 주는 금액이다. 거래소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은 은행이 예치금을 운용해 수익률 일부를 거래소에 지급하면 다시 고객에게 반환하는 식이다. 국내 원화마켓 거래소 5곳(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이 지급해야 할 예치금 이용료는 총 1047억 원으로 추산된다. 예치금 이자율은 금융당국이 5대 원화마켓 거래소에 공통 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 상황이다.

다만 이번 가상자산법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사고 발생 시 입증책임에 대한 정의가 빠졌기 때문이다. 사업자의 고의나 과실을 투자자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가상자산거래소가 의무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예치금에만 제한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는 고객이 1억 원을 가상자산거래소에 예치해 8000만 원의 코인을 구매한 뒤 가상자산거래소가 파산했다면, 남은 2000만 원만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법에 대해 “시행 초기인 만큼 차츰 보완해야겠지만, 업권법이 생겼다는 점에서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진입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고객의 자산 보호가 강화되고, 가상자산 시장에 건전한 거래 질서가 확립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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