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국가배상 판결 잇단 항소는 책임 회피”
피해자 정부 비판… 탄원서 모집
고법 22일 항소심 진행 예정
부산경찰청 “개입 증거 없다”
준비서면 통해 과오 부정 논란
최소 657명의 수용자가 목숨을 잃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에 정부가 항소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항소심 준비서면을 통해 ‘경찰 개입 증거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내무부 훈령에 따랐을 뿐’이란 입장을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는 오는 22일 형제복지원 사건 국가 배상 판결(부산일보 2월 1일 자 10면 보도)에 대한 항소심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형제복지원 피해자 1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들에게 총 45억 3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정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 20일 형제육아원 설립 때부터 1992년 8월 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최소 657명의 수용자가 목숨을 잃고 각종 인권 침해 피해를 당한 사건이다. 부산경찰청은 재판을 앞두고 준비 서면을 통해 ‘경찰 외에도 부산시 공무원이나 형제복지원 관련자들이 경찰관임을 사칭하며 직접 피해자들을 불법 연행 등 수용시킨 경우도 많다’며 ‘정확히 경찰관에 의해 연행됐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국가 배상 판결이 날 때마다 항소하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일에도 피해자 6명에게 14억 4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2월에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부산 최초 판결에 부산시와 함께 항소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제기한 국가 배상소송은 총 34건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첫 배상 판결 이후 ‘1년 수용에 8000만 원’ 기준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첫 항소 당시 법무부는 항소 이유에 대해 “배상액의 적정성, 관계자 간 형평성 등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은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며 BBC 등 외신도 주목할 만큼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과거 이를 묵인한 정부와 관계 기관이 책임감을 갖고 판결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법원의 배상 판결에 항소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이향직 대표는 “국가 책임을 인정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까지 나온 마당에 항소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가 이해가지 않는다”며 “일본군 위안부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정부가 정작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은 외면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해자들은 항소를 이어가는 정부를 비판하며 탄원서 모집에 나섰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온라인 서명 방식으로 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마련 중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도 해당 탄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바 있다. 이밖에도 현재까지 시민 700여 명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하면서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합당한 배·보상 조치와 트라우마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권고 사항을 내놓은 바 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