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부두 물류창고, 불꽃놀이 계기로 문화공간 ‘대변신’ [북항을 '글로벌 핫플'로]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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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이 된 녹슨 창고, 대만

대만 남부 최대 항구 도시 가오슝
물류 쇠퇴 반면 예술 중심지 도약
보얼특구, 창고 개조해 작품 전시
타이난 블루프린트, 예술가 밀집
별도 조직·민간 협력 통해 탈바꿈

대만 가오슝시 보얼예술특구에 있는 물류창고의 벽면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대만 가오슝시 보얼예술특구에 있는 물류창고의 벽면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가오슝은 대만 남부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수도 타이베이에 이은 제2의 도시다. 지금은 물류 기능이 쇠퇴하고 문화와 예술 중심지로 도약했다. 지난 6월 24일 취재진이 찾은 가오슝 보얼예술특구는 민간 협력을 통해 낡은 항만을 새로운 콘텐츠로 탈바꿈한 모습이었다. 항만 노동자나 로봇을 형상화한 약 3m 높이의 대형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됐고, 옛 물류창고 건물 벽면에는 지역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그림으로 가득했다. 창고 앞 항만에는 110m 길이의 다강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만 최초 수평 회전 다리인 다강교는 매일 오후 3시 회전 쇼를 하며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강교 중앙의 전망대에서는 가오슝항과 보얼예술특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곳을 함께 찾은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 서광덕 교수는 “보얼예술특구는 민간 협력과 전문 센터를 통해 항만 재개발을 이룬 성공적 사례”라면서 “항만 역사와 예술 작품을 적절히 배치해 공공성을 확보한 동시에, 매력적인 상업 시설을 들여 관광객 발길을 효과적으로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

■낡은 항만, 예술로 꽃피다

보얼은 대만어로 ‘제2항구’라는 뜻이다. 실제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항 제2항구의 물류창고가 밀집한 지역이다. 1858년 개항한 가오슝항은 20세기까지는 세계 3위 항만으로 이름 날렸다. 하지만 부산항과 상하이항 등 주변 항만이 빠르게 발전하며 점차 물류 기능이 쇠퇴했다.

가오슝항이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주목받은 건 2000년 들어서다. 당시 가오슝시는 대만 최대 불꽃놀이 행사 장소를 물색하다 땅이 넓고 빈 창고가 많은 보얼에서 개최를 결정했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 지역 예술가들은 2001년 보얼예술발전협회를 설립해 보얼에 있는 수많은 유휴 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보얼의 가능성을 엿본 가오슝시는 이곳을 예술특구로 지정하고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가오슝시는 예술 시설이나 관련 행사 등을 의도적으로 보얼예술특구에 집중시켰다. 교통 인프라를 갖춰 접근성을 높이고, 창고도 사용 허가를 받으면 개조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선했다.

이런 노력으로 보얼예술특구 내 창고는 3개에서 현재 26개로 급격히 늘었으며, 이곳에는 8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매년 방문객만 500만여 명에 이른다. 대만관광청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보얼예술특구를 찾은 관광객은 약 494만 명으로 이미 지난해 관광객 수를 뛰어넘었다.

창고를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창고를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공공·상업 균형 지킨 운영센터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시 문화국 산하 ‘보얼운영센터’가 관리한다. 2006년까지는 지역 예술가와 대학교가 운영했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공을 넘겨받은 가오슝시는 직접 운영하지 않고 별도 조직을 만들어 위탁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공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운영을 원했기 때문이다.

가오슝시 문화국 왕 후이린 보얼운영센터장은 “센터가 보얼예술특구를 운영하면 정부 규제를 받지 않고 유연하게 인재를 채용하거나 창고를 관리할 수 있다”면서 “민간이 100% 운영하면 지나치게 상업화될 수 있지만, 우리 방식은 공공성과 상업성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얼운영센터는 임대료나 행사 개최를 통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자체 기금을 운용한다. 연간 약 8000만 대만 달러(33억 8000만 원)에 불과한 시 정부 지원으로는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마저 2014년부터 지원이 끊겼다. 운영센터는 가오슝시가 임대한 민간 소유의 창고를 필요한 사람에게 재임대하며 수익을 얻는다.

현재 운영센터 직원은 총 55명이다. 가오슝시에서 파견된 공무원 30여 명과 운영 기금으로 고용된 자체 인력 등을 합한 숫자다. 이들은 보얼예술특구 안에 예술가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1년에 20~30명의 국내외 예술가를 지원한다. 또한 디자인 전시회 같은 대형 행사를 끊임없이 개최해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민간과 콘텐츠 지속 개발

보얼예술특구처럼 대만은 민간 예술가와 협력하는 사례가 많다. 가오슝시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타이난시에도 특별한 문화 공간이 있다. 바로 ‘블루프린트 창의문화공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공무원들의 기숙사였지만 지난 2015년 예술가들과 독특한 상점이 가득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대만 타이난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구역 모습. 이상배 기자 sangbae@ 대만 타이난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구역 모습. 이상배 기자 sangbae@

취재진이 찾은 블루프린트 입구에는 과거 목조 건물의 뼈대에 조명을 두른 독특한 구조물들이 눈에 띄었다. 블루프린트 안에는 다양한 기념품이나 소품을 판매하는 26개의 가게가 자리했다. 옛 폐가를 리모델링해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이색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만 타이난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구역 모습. 이상배 기자 sangbae@ 대만 타이난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구역 모습. 이상배 기자 sangbae@

블루프린트는 타이난시 문화국이 운영하지만 정부 예산이 아닌 자체 예산으로 거의 운영된다. 연간 최대 약 200만 대만 달러(8500만 원)밖에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만 타이난시 문화국 쉬 셴루 문화창의발전과장은 “블루프린트는 저렴한 임대료로 입점하려는 기업과 청년이 많다”면서 “지역 청년, 예술가들과 협력해 상점과 예술 작품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등 콘텐츠 확충에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일보>와 국립부경대 공동취재단이 대만 타이난시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배 기자 sangbae@ <부산일보>와 국립부경대 공동취재단이 대만 타이난시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배 기자 sangbae@

대만/글·사진=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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